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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고갈 뒤에는 충족이 있고, 피로 뒤에는 활기가, 불만 뒤에는 자족이, 오후의 몽롱한 불쾌 뒤에는 저녁의 싱그러운 소쾌가 있다. 그러나 고갈, 피로, 불만, 불쾌를 씻어내고 걸러내는 몸의 정화력과 마음의 소생력 없이 충족, 활기, 자족, 소쾌가 절로 생길 수는 없으리라. 몸이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데는, 마음이 존재를 소생시키는 데는 침묵과 관조라는 내면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한다. 文의 창조력을 자기 내면에서 발견한 이라면, 침묵이 그의 창조력을 샘솟게 하는 근원처임을 알아야 하리라. 그리고 침묵은 늘 있다. 늘 있으면서 없는 듯한 것. 늘 없는 듯하면서 있는 것.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수동성. 그 식물적인 느림. 그 광물적인 고요함. 침묵이 불현듯 나를 불러 세워 무언가를 쓰게 할 적에, 쓰라고 .. 2009. 12. 29.
말을 하고 나면 말끝마다 후회로다 엊그제 키노쿠니아 아래 Japan City 에서 구입해온 녹차를 마시고 있다. 그간 마셔온 중국차들도 다 떨어지고 한국산 녹차도 바닥이 나고, 일본 말차, 페퍼민트 티, 저 유기농식품 판매점인 매크로에서 산 얼그레이 그리고 이 일본 반차가 이즈음의 양식의 전부이니, 가난도 이만 저만한 가난이 아니다. 그러나 어제는 바쁘다는 이유로, 오늘은 글쓴다는 이유로, 1인용 다구에 마시니 차를 제대로 음미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차는 가루가 물에 섞여 있어 한국 녹차에 비해 맑은 느낌은 적다. 그러나 몸만큼은 어제보다 훨씬 가볍고 맑아졌다. 어제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어떤 울증의 기운이 몸 한구석을 떠돌았으나, 하룻밤의 잠, 하룻밤의 깊은 죽음은 다시 신천지를 열어놓았다. 선생의 말처럼 어른이란 “마음의.. 2009. 12. 23.
박세당 神像은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건 맞는 말이기도 아니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에게 의지처가 있어야 할 때 그 의지처는 어떤 이에게는 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막사발에 떠놓은 물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돌과 물 한 사발에 비해 커다란 금부처는 얼마나 흉한가. 돌과 물 한 사발에 비해 커다란 금빛 십자가와 예수상은 얼마나 흉한가. 나의 신상, 나의 의지처는, 늘 그렇듯이, 글자 몇 개인데, 이즈음에는 이 네 글자, 박세당이 좋아했다는 仁者不懼다. 여기에 仁者無垢도 보태본다. 두려움은 간을 손상시키고 더러움은 눈과 마음을 손상시키니 그가 뉘든 인간이라면 모두가 염오하고 멀리하고 싫어하는 바이다. 마음이 오그라드는 상태, 마음에 이것은 더럽다는 생각과 함께 어떤 거리낌이 느껴지는 상태를.. 2009. 12. 23.
자카란다와 까마귀 자카란다는 연보랏빛으로 완연히 피어났고, 그 배경을 오늘은 이 마음처럼 착 가라앉은 칙칙한 하늘이 만들어주고 있다. 자카란다에 얹혀져 있어온 예의 까마귀 둥지에는 이제 새끼가 어느 정도 형상을 갖추고 누워 있고, 오늘도 어미는 새끼를 품에 품고 있다. 며칠 전에는 수컷과 암컷이 함께 둥지에 있는 풍경을 목격했다. 저 둥지는 그러니까 어린 생명을 위한 것이지만, 운영은 둘이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암컷은 새끼를 품고 있고, 수컷은 바지런히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저 꼬락서니. 저 꼬락서니를 理想으로 생각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 운운하며 저 꼬락서니에 경의를 느끼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性愛에, 내리사랑에, 밥벌이에 무슨 신성함이 있으랴. 그러나 저 꼬락서니에 인간과 문명의 구차스럽고.. 2009. 12. 23.
고등어 루시드 폴의 [고등어]를 듣다. 좋다. 귀가 좋아라 한다. 산울림의 "한밤 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여얼어보니이" 라는 [어머니와 고등어]인가 하는 노래보다 훨씬 좋다. 이런 류를 좀더 만들어주, 루시드 폴. 우울한 사랑 이야기 적힌 종이비행긴 고만 좀 접고. 한가지 결점. 왜 아침밥상이 아니고 저녁밥상일까. 왜 저녁밥상에 고등어란 말인가. 가족이 모이니까? 가족은 아침에는 안모이나? 세 끼를 먿는 이가 제일 조심하고 적게 먹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저녁밥이다. 아침밥이 아니다. 하로가 고난하면 저녁밥을 많이 먹게 된다 => 저녁밥을 많이 먹으면 밤에 늦게 잘 수 밖에는 없다 => 새벽살이 땡 = 오전 늦게, 즉 8시 이후에 일어난다... 도시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악순환 중에 이와 같은 악순환도 .. 2009. 12. 23.
呂로 살기 있음직한 바람직한 나로 나를 대치하는 것이 문제다. 있음좋은 내가 남에게 보여져야 하겠기에, 그 모습을 실현하고 있을지 모를 남을 둘러 참조하려 하지만, 그러한 바람직한 모습을 그이가 보여준다 한들, 그것 역시 그이의 참 모습이 아니라 그이가 만들어낸 그이의 바람직한, 있음좋은 모습일 공산이 크다. 이러한 가면극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하면 좋을까. 나는 내가 버렸으면 하는 나의 모습을 지우지 않음으로써만, 다시 말하여 모자란 나에게 내가 인정됨으로써만, 또 거꾸로 내가 모자란 나를 인정함으로써만, 나는 있음좋은 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모두 헛된 가면놀이일 뿐이다. 그럼 모자란 나는 무엇이며 또 그냥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그냥 “나”라 부를 수 있는 것을 유영모 .. 2009.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