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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은 되돌아온다 (1) 3/1절. 광복절. 이런 날에 비해 6/6 현충일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날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개인사를 되돌아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월 6일>이라는 날짜가 임의적으로 지정된 비역사적인> 날짜라는 데 있다. 대체 왜 6월 6일이었을까? 기록에 의하면, 6/25 전쟁이 일어난 6월의, 아무 날이나 골라서 정했다고 한다. 1956년 이승만 정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니까 월 25일>로 정하면 될 것을, 6월 25일만은 피하고 싶으니까 엉뚱하게 6월 6일이라는 무의미한 날짜가 선택된 것이다. 월 25일>을 현충일로 정하는 게 맞지 않을까? 6월 25일, 그날을 기억하고 한국 전쟁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약 5년의 좌우대립의 성립과 그 폭발로서의 한국 전쟁이라는 귀신적 사건은, 아직도.. 2026. 8. 23.
폴 호컨, 《탄소라는 세계》 (이한음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5) 1. 한국 출판사의 책 제목 선정은 실수가 아닐까. 원저작자와 원출판사가 탄소: 생명에 관한 책>이라는 기가 막히는 제목을 뽑았는데,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다니. 2. 폴 호컨. 1946년생. 올해로 만 80세이고, 이 책은 만 79세에 출간된 책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탄소라는 세계>는 노년기의 작품이다. 나는 나이든 이가 쓴 이런 책을 좋아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웅숭깊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 이 장이 보여준다. 3. 번역자 이한음은 이 마지막 장을 잘 번역했다는 점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만하다. 사실 이한음의 번역은 상당히 매끄럽고 좋다. 그러나 그는 기존 번역어에 지나치게 굴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라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4. 책의 마지막.. 2026. 8. 23.
<심청가> 중 <중 타령>과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 심청전>이라 하면 이야기가 되고, 같은 그것을 심청가>라 하면 판소리가 된다. 한국에서 무당의 사회적 역할은 (굿)판shamanic ritual common field에 모인 이들을 울고 웃게 하는 것인데, 이런 판의 프로토콜은 훗날 고스란히 판소리로 옮아갔다. 즉, 소리꾼은 소리판에 모인 청중을 울고 웃게 하는 직능을 수행하게 된다. 소리꾼이 그 직능을 잘 해내든 말든, 그가 익혀야 하는 대본은 소리꾼의 그런 역할이 수행되도록 직조되어 있다. 심청가>도 물론 그러한데, 중 올라간다>라는 말(정확히는 노랫말, 소릿말)로 시작되는 심청가>의 한 대목(중 올라간다> 또는 중 타령>)은 애끓음 대목이라기보다는 웃음 대목에 가깝다. 각설, 중 올라간다> 또는 중 타령>의 서사는 무엇일까? 몽은사 화주승이 개천에.. 2026. 8. 23.
넷플릭스 드라마 <동궁>을 시청하며: 한국인은 무교巫敎의 폐허 위에서 살아간다 한국은 무교巫敎의 무덤 위에 건설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무巫의 폐허, 무巫의 잔해물과 더불어 한국인은 살아간다. 한반도에서, 그 너머에서 고래로 무당은 크게 네 가지 직능을 수행했는데, (1)의사 (2)종교인-사제 (3)공동체 예술가 (4)예언가가 그것이다. 오늘날 무당은 앞의 세 가지 직능을 전문직종 종사자들인 의사, 종교인, 예술가들에게 죄 빼앗긴 채, 네 번째 직능의 수행자로 환원되고 말았다. 치유사-종교인-예술가인 무당의 신성한 거처는 한낱 점집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의 무당은 무당(=위대한 자)이 아니라 점술가에 불과하다. 이것 역시 무교의 붕괴 이후 사회, 무교 잔해물 사회의 한 풍경이다. (영화 한란>에 위대한 자로서의 무당, 제주도 심방이 잠깐 나오지만, 감독이 그 심방을 잘.. 2026. 8. 23.
인류세, 예술의 가치 인류세, 예술의 가치 이 모든 이야기는 어떤 함의를 지닐까?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치 있는 예술을 알아차리고 예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할까? 아니면 기술권 비대화에 기여하는 예술, 상품 과다 생산 운동에 동원되는 예술과 디자인, 인간의 부당한 행동이 연루된 예술의 얼굴을 알아차리는 것이 급선무일까? 그리하여 예술 창작 자체의 가치를 재고하고 창작을 자제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일까? 거주 가능 지구가 위태로운 시대에, 식량의 공급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화재와 홍수로 주택이 전소되는 상황에서 예술이란 다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질문에 정답은 있을 수 없기에 이러한 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좋은 혼란이다. 일단 이러한 질문을 다 던져봐야 한다. 특히 예술.. 2026. 8. 23.
인류세의 예술, 인간과 예술 인류세적 맥락에서는 예술 역시 진지한 재고 대상이다. 비대해진 기술권을 구성하는 모종의 과잉 물질 중 예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예술은 (상품, 에너지, 편의 기술물, 쓰레기, 오염물, 기술화석과 더불어) 범람하는 사물에 속한다. 기술권의 비대화가 문제라면, 그것에 기여하는 과생산된 예술도 문제일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서 예술과 디자인이 상품, 테크놀로지, 이산화탄소의 초과 생산(범람)을 지속하는 심미적 도구로 동원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소비자가 아닌 당대인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소비자의 심미적 감각을 자극하거나 그것에 호소하지 않는 상품·기술품이 하나라도 제작되고 있을까? 예술의 전문 영역으로 여겨지던 아름다움과 디자인은 그간 상품·기술품 제작 영역에.. 2026.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