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에 대하여
오던 비 그치고, 잠시 지난 일기를 읽다가, 다시 ‘만’에 대해 생각해보다. 나 잘났다, 너희는 못났다, 하는 생각이 바로 만이다. 혹은 나 못났다, 그래 나는 못난 이다, 하는 생각도 만이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혹은 예술을 한다는 이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의 장애물 중 하나는 바로 ‘만’이다. ‘만’이 없는 세계에 살자. ‘만’ 없는 세계에 살면, 그 세계에 사는 이의 글과 작품에도 ‘만’의 그림자는 절로 사라지리라. 다시 말하여, 어떤 특정한 (아마도, 예술적인) 삶을 사는 것, 그 삶에 거주하는 것, 그 삶에의 거주민 자격을 얻는 것 – 이것이 그 모든 철학적, 과학적, 예술적 창작에 우선되어야 한다. 즉, 입니입수하여, 니와 수에, 입니입수한 자의 존재가 일체된다면, 그 자의 ‘만’은 서..
2009. 12. 21.
허허참 만사예정설에 대하여
오늘은 인간의 業과 緣에 대해 생각해본 날이다. 이걸 생각해본 것은, 버우드 울워쓰 - 수퍼마켓의 이름 - 의 계산대에서 계산 차례를 기다리면서이다. 이 때 내 앞에는 한 노파가 있었다. 나의 주목을 끈 것은 노파의 얼굴이나 행색이라기보다는 노파가 구입하려고 하던 상품의 세목들이었다. 그니가 사려고 한 것들에는 빵, 우유, 인스턴트 콩, 인스턴트 야채, 몇 가지 과일, 담배,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것들, 또, 커다란 감자 한 꾸러미가 있었다. 이것이 눈에 띄었던 것은, 그것들 모두가 평소에 내가 구입해보지 못했던, 않았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쇼핑 목록에서 배제하려고 애를 쓰는 온갖 humble food, 오염된 음식……그니가 구입하고 있었던 것은 전부 그런 종류의 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2009.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