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41

자유 밤새 큰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개었다. 날이 폿폿 개어 바람은 한결 청청해졌고 이러한 푸름 속에서 날도 한층 보드라워졌다. 오늘밤의 달은, 황정견이 말한 바로 그 제월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밤새 고생했을 까마귀 새끼가 푸더덕 몸을 비틀고 일어나 제 부리로 제 날개며 몸통을 살펴보고, 이리꿈쩍 저리꿈쩍 해본다. 며칠 사이에 제법 용모가 준수해졌다. 그러나 이 녀석은 알에서 깨어나 단 한 번도 그 깨난 자리를 나서본 적이 없는 놈이다. 날개가 돋아났어도, 그 쓰임과 그 쓰임이 주는 자유에 무지한 놈인 것이다. 저 녀석은 언제 제 태난 곳을 박차고 세계에 팔랑팔랑 나아가볼까. 그의 비상은 아지 못했던 세계를 향해 제 존재를 투기한다는 점에서 자유로의 도약이며, 또 더는 부모로부터 부양받지 못하고 가혹한 쟁투의.. 2009. 12. 21.
오역자 오역자는 지식인의 탈을 쓴 일종의 범죄자다. 우리가 원문을 이해할 가능성을 파괴한 이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산문가 중 한 명인 아도르노의 위대한 산문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바로 [미니마 모랄리아]를 우리말로 번역한 최문규 씨다. 독일에 가서 박사까지 하고 서울대에서 교수까지 하는 양반이 이 모양이니, 우리가 과연 뉘를 믿을 수 있겠는가. (2005년에 김유동 씨가 새로 번역을 했지만, 그 품질은 최문규 씨의 것에 비해 얼마나 나은 것일지.) 그가 저지른 범죄는 이중의 것인데, 하나는 오염된 한국어를 생산하여, 독자들의 한국어를 교란시켰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엉성한 문장 조합으로 아도르노의 작품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파괴했다는 것이다. 물론 출판.. 2009. 12. 21.
만에 대하여 오던 비 그치고, 잠시 지난 일기를 읽다가, 다시 ‘만’에 대해 생각해보다. 나 잘났다, 너희는 못났다, 하는 생각이 바로 만이다. 혹은 나 못났다, 그래 나는 못난 이다, 하는 생각도 만이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혹은 예술을 한다는 이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의 장애물 중 하나는 바로 ‘만’이다. ‘만’이 없는 세계에 살자. ‘만’ 없는 세계에 살면, 그 세계에 사는 이의 글과 작품에도 ‘만’의 그림자는 절로 사라지리라. 다시 말하여, 어떤 특정한 (아마도, 예술적인) 삶을 사는 것, 그 삶에 거주하는 것, 그 삶에의 거주민 자격을 얻는 것 – 이것이 그 모든 철학적, 과학적, 예술적 창작에 우선되어야 한다. 즉, 입니입수하여, 니와 수에, 입니입수한 자의 존재가 일체된다면, 그 자의 ‘만’은 서.. 2009. 12. 21.
허허참 만사예정설에 대하여 오늘은 인간의 業과 緣에 대해 생각해본 날이다. 이걸 생각해본 것은, 버우드 울워쓰 - 수퍼마켓의 이름 - 의 계산대에서 계산 차례를 기다리면서이다. 이 때 내 앞에는 한 노파가 있었다. 나의 주목을 끈 것은 노파의 얼굴이나 행색이라기보다는 노파가 구입하려고 하던 상품의 세목들이었다. 그니가 사려고 한 것들에는 빵, 우유, 인스턴트 콩, 인스턴트 야채, 몇 가지 과일, 담배,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것들, 또, 커다란 감자 한 꾸러미가 있었다. 이것이 눈에 띄었던 것은, 그것들 모두가 평소에 내가 구입해보지 못했던, 않았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쇼핑 목록에서 배제하려고 애를 쓰는 온갖 humble food, 오염된 음식……그니가 구입하고 있었던 것은 전부 그런 종류의 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2009. 12. 21.
트위팅은 도파민 생성을 위한 것 2007년 4월의 글이다. 당시엔 트위터란 게 없었지만, 이 몸이 왜 트위팅을 얼마간 경계하는지 그 연유가 이때 쓴 글에 조금 나와 있다. 느긋한 대화. 깊이 이어지며 새로온 물길을 열며 나아가는 대화. 차와 술을 곁들인 이러한 대화의 맛과 멋을 어떻게 “온라인 채팅 광장”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 오늘 Abbeys Bookshop에 들러 {satisfaction} (그레고리 번스 작)의 실물을 확인하고, 서문의 일부를 읽어봤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에야 비로소, 도파민이 어떻게 해서 뇌에서 생성되는지가 밝혀졌는데, 밝혀진 연구결과에 따르면, 도파민을 발생시키게 하는 계기는 다름 아닌, challenge 와 novelty 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언가 도전할 만한 것이 앞에 있.. 2009. 12. 21.
퀸스랜드 주립도서관 풍경 이 도서관은 빅토리아 주립도서관, NSW 주립도서관에 비해 훨씬 모던하고 좋은데, 건축설계를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한번 찾아볼 필요가 있을 듯. 브리스번 강 폭은 템즈 강의 폭 정도 된다. 사실, 멜번하고 비슷하겠지 하고 있었는데, 강 폭이 너무 커서 놀랐다. 멜번의 야라 리버는 쎈 강 하고 비슷하다. 강이 아니라 개울이라는 소리. 시드니의 파라마타 리버는 사실 강이 아니고. 한강도 사실은 강이라 하기엔 너무 큰 감이 있다 봄. 이 나무는 자카란다가 아니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떤 놈은 붉은 색 꽃을 피우는 데 장관이다. 집 앞에서 보았다. 이 꽃 풍경은 다음 기회에. 도서관은 이렇게 물과 나무 근처에 있으면 좋다. 물 근처에 만들기가 힘들다면, 이렇게 큰 나무를 심든지, 혹은 그 나무 근처에 지으면.. 2009.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