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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

by 유동나무 2009. 12. 23.


神像은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건 맞는 말이기도 아니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에게 의지처가 있어야 할 때 그 의지처는 어떤 이에게는 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막사발에 떠놓은 물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돌과 물 한 사발에 비해 커다란 금부처는 얼마나 흉한가. 돌과 물 한 사발에 비해 커다란 금빛 십자가와 예수상은 얼마나 흉한가.

 

나의 신상, 나의 의지처는, 늘 그렇듯이, 글자 몇 개인데, 이즈음에는 이 네 글자, 박세당이 좋아했다는 仁者不懼다. 여기에 仁者無垢도 보태본다. 두려움은 간을 손상시키고 더러움은 눈과 마음을 손상시키니 그가 뉘든 인간이라면 모두가 염오하고 멀리하고 싫어하는 바이다. 마음이 오그라드는 상태, 마음에 이것은 더럽다는 생각과 함께 어떤 거리낌이 느껴지는 상태를 좋아하는 이는 이 지상에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에 두려움 없는 이는 없고, 마음에 더러움 없는 이는 없으니 어찌 절곡한 말이 아닐 수 있으랴. 이 여덟 글자만 있으면 나는 늘늘의 沼로 늘 회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여덟 글자를 진실로 아는 일이란 평생의 숙업이리라.
 

2007.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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