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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11

탄소 근대사가 필요하다-조효제 <탄소사회의 종말> 외 주와 참고문헌만 약 100면에 이르는 조효제의 《탄소사회의 종말》(2020). 지금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탈탄소의 수평 전환과 탈성장의 수직 전환의 병행이라는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고 (자세한 논의는 그러나 없다) 전환을 위한 제1의 과제로 ‘관점 세우기’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기본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대목 ‘관점 세우기’에서 일본과 서구에 의한 근대 이식(근대화) 과정, 근대사회로의 체제변형 과정에서 백년 넘게 누적 형성된 전 사회적 행복관, 사회발전관, 가치지향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핵심적인 사항에 관한 논의가 놀랍게도 누락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울리히 브란트가 말한 ‘제국적 생활양식’을 착실히 수용한 한국이 어떻게 이것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관한 논의.. 2021. 7. 23.
나희덕, <예술의 주름들>(마음산책, 2021) 나희덕 선생님의 《예술의 주름들》(마음산책)을 펼쳤다. 1부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찢긴 대지를 꿰매다. 내가 편집자였으면 이 1부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하지 않았을까? 살펴보니, 1부의 제목은 레베카 솔닛의 걷기론에서 가져온 것이다. 걷는 사람은 길이라는 실로 찢긴 대지를 꿰매는 바늘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대지를 찢었을까? 그건 석유라고 해야만 한다. 석유가, 석유의 변형체인 아스팔트가 대지를 찢었다. 걷기는 석유문명으로 치달았던 삶을 참회하고,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하려는 기도의 몸짓이자 실행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다. 1부는 생태적 인식과 실천을 담았다는데, 3부가 눈을 끌어당긴다. 자코메티와 마크 로스코 그리고 글렌 굴드를 다룬 글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손은 자코메티를 .. 2021. 7. 12.
서경식, <나의 영국 인문 기행> (반비, 2019) 1. 집으로 가는 KTX 기차 안. 내려갈 때 읽었던 책을 또 펼쳤다. 이 책 은 묘한 책이다. 오른쪽 면에만 글이 있기 때문이다. 왼쪽 면에는 전부 이미지로 채웠다. 미술 작품이 많아 컬러 인쇄를 했고, 종이도 빳빳한 느낌의 100g 종이. 뒷면 이미지가 비치지 않게 잘 골랐다. 이런 종이엔 H나 F 연필로 밑줄을 그으면 안 된다. HB가 적당하다. HB가 쓸모 있는 이런 종이,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컬러 사진 이미지라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2 . 의 문체와 같은, 심부를 파고 드는 진한 감동은 문장에서 찾기 어렵지만, 배우고 새기는 재미가 풍족한 책이랄까. 그러니까 informing 한 면모가 moving 하는 면모보다 강하다. 장소(장소 방문, 여행)를 매개로 장소에 얽.. 2021. 5. 30.
조병준, <퍼스널 지오그래픽>(수류산방, 2021) 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책. 온통 사람 이야기로 가득하니까. 아닌가? 어쩌면 이라는 제목이 더 낫겠구나. 그가 전하는 사람엔 장소가 끼어 있고, 그가 거닌 장소에는 사람이 묻어 있으니.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지 않은가? “스쳐지나가는 자에게 보이는 건 풍경뿐이다. 그 풍경 속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살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207쪽) 이 단 두 문장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집약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풍경의 심부로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니,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그는 사람 이야기로, 세상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 그러니 이라는 제목이 더 나을는지도. 조병준. 그는 왜 그리 사람을 많이 만났고, 사람 이야기를 많이 .. 2021. 3. 6.
오우치 마사노부 <산속생활교과서>(보누스, 2017) 자립(자급자족)의 대가 존 세이무어의 자립 기술 실용서는 조선어로 번역이 안되어 있다. 왜 그런지는 내사 모르지. 하지만 다행히도 오우치 마사노부의 책은 번역이 되어 있다. 2017년 출간. 스도쿠 책도 내고 헬리콥터 책도 내는 매우 요상야릇한 출판사 보누스에서 나왔음. 솔직히 오늘 처음 보고는 곧 바로 샀다! 아니 살 수 없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바로 알아보는 눈 정도는 나도 있다. 저자는 전동 공구와 대비되는 손 도구를 예찬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목표에 쫓기는 일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생활은 다르다. 시간을 들여서 얻을 수 있는 발견과 즐거움이 무궁무진하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시간을 다루는, 시간과 관계를 짓는 기술의 터득, 실천이자,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시간.. 2021. 3. 2.
에리히 프롬, <불복종에 관하여> (마농지, 2020) 라는 책의 내용을 잘 모르지만, 책의 제목만큼은 상당히 불량하다. 제목에 나오는 "삶의 무기"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삶"의 무기가 아니라 세상에 처한 개인의 삶의 무기를 뜻하는 것임이 분명하고, 어떤 무언가의 도구가 될 수 없는,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유일한 학문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런 철학마저도 유용성이라는 원칙(지배자)의 휘하에 거느리려고 하는 불순한 뜻이 이 책의 제목에 비친다. 이 책의 소개문에 나와 있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철학/사상이라는 문구는 이런 의심을 정당한 것이라 말해준다. 반면, 20세기 (그리고 지금) 인류의 정신적 스승, 에리히 프롬의 는 철학이 어떻게 "자유롭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안내자가(거칠게 말하면,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철학은 이.. 2021.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