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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by 유동나무 2009. 12. 29.


고갈 뒤에는 충족이 있고, 피로 뒤에는 활기가, 불만 뒤에는 자족이, 오후의 몽롱한 불쾌 뒤에는 저녁의 싱그러운 소쾌가 있다. 그러나 고갈, 피로, 불만, 불쾌를 씻어내고 걸러내는 몸의 정화력과 마음의 소생력 없이 충족, 활기, 자족, 소쾌가 절로 생길 수는 없으리라.

몸이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데는, 마음이 존재를 소생시키는 데는 침묵과 관조라는 내면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한다. 文의 창조력을 자기 내면에서 발견한 이라면, 침묵이 그의 창조력을 샘솟게 하는 근원처임을 알아야 하리라.

 

그리고 침묵은 늘 있다. 늘 있으면서 없는 듯한 것. 늘 없는 듯하면서 있는 것.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수동성. 그 식물적인 느림. 그 광물적인 고요함. 침묵이 불현듯 나를 불러 세워 무언가를 쓰게 할 적에, 쓰라고 부추길 적에, 나는, 이 부름에, 저항하지 않으리…….

 

2009.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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