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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산문58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릿Wall Street 올리버 스톤의 을 보다. 그 버블은 결국 아이들이 장난삼아 만드는 버블이라는 이야기? 주인공의 대사 중에 있는 말. "그도 나처럼 자존심이 남극만한 사람이거든." 나도 한때 자존심이 남극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이라는 것은 '나도 존엄한 존재'라는 핵심적 아이디어를 제외하고, 바늘로 찌르면 죄 한번에 터지고 마는 버블. 이 남극만한 크기의 버블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이냐. 이것이 우스꽝스럽다는 걸 모르는 이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이냐. 아름다운 사람은 이 자존심이 콩알만해진 사람 볍씨만해진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어린이'라 부른다. 2010. 12. 5.
이창동의 시 이창동의 를 보다. 세 편의 시 행동의 시 (음풍농월에 대한 촌부의 증오) 시 (사세의 시) 그리스도라는 시 2010. 12. 4.
박영신의 사회학 강독 수업* - 너절함에 대하여 (* 여기에서 ‘사회학 강독 수업’이라 함은 사회학 이론서인 서양 원서를 원문 그대로 강의 시간에 함께 읽는 수업을 일컫는다. ) 그때 강단 위의 그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이들(강단에 서는 이들)과 다른 독특한 색깔이 있었다. 하나는 그의 기품 있고 멋드러진 외양 혹은 모색이다. 그는 늘 준수한 옷차림이 아니면 강단에 서질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는 그의 공격적인 어투이다.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폭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공중의 전사처럼, 그의 혀는 언제든 우리들을 공격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늘 장전된 혀의 상태로 강의실에 들어왔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날-말의 날 선 공격성은 늘상 부드러운 어체에 담겨 있었다. 말의 실질은 모욕이었지만, 껍질은 경어체였던 것이다. 그 폭격의 대상, 모.. 2010. 6. 1.
르네상스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 무대에 이 그 자취를 감춘 지는 오래다. 그렇기는 하나 르네상스 시대에 개화한 이, 이 보편 교양인의 이상 덕에 역사에 출현한 르네상스 인간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가치 있는 어떤 것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 르네상스 인간은 주지하다시피 물론 박학다식한 polymath 이, 한 분야가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출중한 기량과 재능을 보여주는 인간이다. 달리 말해, 여러 분야에서 높은 지식과 교양을 두루 겸비한 이를 우리는 오늘날 르네상스 인간이라 부른다. 르네상스 인간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독특한 시대적 풍토 탓이다. 그 풍토란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트집잡기는커녕 외려 미덕으로 삼고 존숭하는 어떤 독특한 교양 중시 풍토인데, 말할 것도 없이 .. 2010. 4. 14.
대안종교 “아마도 종교가 필요한 순간이겠다. 한데 우리 사회의 종교들은 신뢰할 만하지 않다. 현존하는 종교 제도들로 인해 사람들은 ‘종교적’이지 않게 되었다. 한데 주체의 위기는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만든다. 종교적이지만 종교적일 수 없다. 이럴 때 사람들은 ‘대안 종교’를 찾는다. 나는 2009년, 아니 그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시민 사회가 선택한 대안 종교는 ‘광장’이었다고 이해한다.” – 김진호, [‘불타는 몸들’의 강요된 침묵, 그것은 나의 욕망인가] 중에서 사람들은 종교적이지만 종교적일 수 없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사람들은 종교적이지 않지만, 종교적이고 싶다. 살을 덧붙이면 이러하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아왔고, 종교 없이 살아왔지만, 이제는 어떤 혼돈의 상황으로 말미암.. 2010. 2. 25.
덧글 대신에 쓰는 글 글이란 글쓰는 주체가 쓰고자 하여 쓰는 무엇이 아니다. 그렇게 쓴 것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글이라 부를 수 없으리라. 외려 글쓰기는 글쓰는 이가 어떤 미디엄이 되는 과정과 더불어 발생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글쓰는 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발생 과정에서 글쓰는 이는, 글쓰기의 주체라기보다는 어떤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어떤 무엇이 그이-매개체를 자극하여, 그이는 절로 쓰게 되는 것이다. 이놈의 인터넷 글살이를 아예 끊지를 못하는 것은 때로 그러한 글쓰기의 자극을 간혹 이곳에서 받기 때문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말인즉 가끔 이곳에서 글은 절로 쓰여지는 것이고, 글쓰기의 미디엄이 되는 과정은 어떤 쾌를 동반하기도 하는 바, 그 쾌미를 못버려 이런 글살이를 못버리.. 2010.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