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일, <기후정의선언> (마농지, 2020)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소우주에서 살기 마련이다. 같은 시공간에 산다고 믿지만, 그건 믿음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렇게 각자의 지붕 아래 살던 이들이 어느 날, 일개의 바이러스로 인해 한 지붕에 모이게 되었다. 이제 각자는 더 이상 각자가 아니었고, 모두가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압력을 받으며, 공통의 단어들, 즉 봉쇄(lock down), 격리(quarantine) 같은 단어들을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였고, 바이러스와 면역, 박쥐와 천산갑에 관한 공부를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로 받아들였다. 코로나의 지붕이 하나의 작은 지붕이라면, 기후(위기)가 만들어낼 지붕은 거대 지붕이어서, 그 지붕은 태양에 비교할 만하다. 우리가 언제 바이러스나 면역에, 숙주동물에 지금처럼 해박했던가? 앞으로 수년 내에 온실가..
2021. 2. 14.
안셀름 그륀, <길 위에서> (분도, 2020)
행복하려고 태어난 걸까? 고생하려고 태어난 걸까? 삶이란 무엇일까? 독일인 신부 안셀름 그륀은 삶이 수행이자 순례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거처는 하늘이니, 지상의 삶이란 집 없는 자, 고향 없는 자, 고국 없는 자, 이방인의 방랑(wandering)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현세의 삶은, 이 현세에만 허여된 특별한 여행에 불과하다. 이렇게 확고하게 믿고 사는 사람이기에, 그륀의 걷기는 범상한 사람의 걷기가 아니다. 아니, 이런 기이한 믿음의 신봉자이기에, 이 사람에게 걷기는 묘한 아우라가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자기가 지금 ‘방랑의 운명’에 처했다는 것, 자신의 유일한 고향은 하늘이라는 것, 그 진리를 되새기고 다시 깨닫기에 걷기만 한 방편도 없다는 것. 그것이 안셀름 그륀의 생각이다. 걸으면, 이러한..
2021.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