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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탈성장 예고편을 보니, 제주도 이야기네? 간간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왔던 남방큰돌고래가 나올지 모르겠다. 제주도는 오늘의 한국이 압축된 섬 같다. 한국의 가지가지들이, 갖가지 역사와 욕망과 그 결과물들이 이 섬에 응축되어 섬을 헐떡이게 한다. 오사카와 연결되면서 조선반도에서 가장 먼저 탄소 근대의 격랑에 휩쓸리기 시작한 곳이 제주도이고, 1940년대 중반 조선을 분단국가로 만든 좌우대립, 좌우투쟁이 가장 맹렬히 폭발한 곳이 이 섬인가 하면, 21세기 들어선 인류의 지반 전체를 뒤흔들 기후변화의 충격이 어느 곳보다도 먼저 제주도의 바다와 산에서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하늘길이 막히자 최우선의 관광지로 우뚝 솟은 섬, 본토(육지)인들이 먹고 싸고 폐기하고 나서는, 그 똥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곳. 그래도.. 2022. 8. 29.
번역가의 의무? 번역가(인/자)에게 의무/임무/소명이란 게 있을까? 번역인의 범죄라는 것은 있을 것이다. 미역을 사다가(캐다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역국을 손수 끓여본 사람은, 미역의 성질을 안다. 달리 말해, 미역의 “다 발현된 것은 아닌 경향과 성향”(제인 베넷, )을 알고, incipient라는 단어의 뜻을 쉽게 간파해낸다. incipient는 제인 베넷의 생기적 유물론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개념어이다. 금속이나 암석, 목재, 먹을거리 같은 물질의 본질을 “incipient tendencies and propensities”라는 말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미역과 제인 베넷을 뒤섞어 이야기해보자면, 한 줌의 마른 미역은 물이라고 하는 외부의 힘과 긴밀히 접촉하여, 그 접촉 방식(접촉 시간과 접촉 면)에 따라 각기.. 2022. 6. 16.
생태주의자 법정 1. 2021년. 영주 부석사를 다시 찾았던 해 그리고 공주 마곡사를 알게 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마곡사에서 하루 자고 (템플 스테이) 다음 날 사찰 내 서점에서 법정 스님 글모음집 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손에 들어온 이 책에서 몇 구절 옮겨본다. 아래 글은 모두 이 책에서 뽑아낸 법정 스님의 글이다. 깊은 시심, 찬찬한 눈빛, 맑은 생각. 이러한 것에 형체감을 부여할 수 있다니, ‘글/말’은 때로 대단하다. 2. 그대는 하나의 씨앗이다. 그러므로 자연에서 알맞은 땅을 찾아야 한다. 사람 누구에게나 땅과 접촉하고 흙에 뿌리박은 삶이 필요하다...모든 사람이 흙을 가꾸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모든 영혼은 아침의 태양과 만나야 한다. 그 새롭고 부드러운 대지, 그 위대한 침묵 앞에 홀로 마주.. 2021. 12. 7.
새 책 <디그로쓰> 출간 저자 요르고스 칼리스, 수전 폴슨,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역자 우석영, 장석준 출판사 산현재 傘玄齋 코로나 팬데믹과 글로벌 기후 위기로 상징되는 지구 생태 위기, 국가 간 · 국가 내 불평등 심화.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치명적 문제들이자 위험 요소들이다. 부유한 북반구 국가들은 코로나 · 기후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가난한 남반구 국가들은 탄소 배출을 수반하는 경제성장이 긴요하다. 이 난국을 해결할 길이 과연 있을까? 기후 파국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저자들은 말한다. 성장 강박에서 벗어나 성장 속도를 늦추고 적정 수준에서 경제 규모를 유지 · 관리하며 새로운 번영 사회를 이루는 것, 즉 디그로쓰(DeGrowth, 탈성장, 성장 지양)의 길만이 기후 파국을 막고 불평등을 해소하며 새로운.. 2021. 9. 6.
탄소 근대사가 필요하다-조효제 <탄소사회의 종말> 외 주와 참고문헌만 약 100면에 이르는 조효제의 《탄소사회의 종말》(2020). 지금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탈탄소의 수평 전환과 탈성장의 수직 전환의 병행이라는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고 (자세한 논의는 그러나 없다) 전환을 위한 제1의 과제로 ‘관점 세우기’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기본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대목 ‘관점 세우기’에서 일본과 서구에 의한 근대 이식(근대화) 과정, 근대사회로의 체제변형 과정에서 백년 넘게 누적 형성된 전 사회적 행복관, 사회발전관, 가치지향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핵심적인 사항에 관한 논의가 놀랍게도 누락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울리히 브란트가 말한 ‘제국적 생활양식’을 착실히 수용한 한국이 어떻게 이것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관한 논의.. 2021. 7. 23.
우리가 모르는 지구의 보물, 새들은 안다 -김재환 1.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은 자신의 책 《한국통사》(범우사)의 첫머리에서 조선의 지리를 다룬다. 지리만 두고 보면 “조선은 동아시아의 이탈리아”라고 서슴없이 말하면서 저자는 조국의 강산에 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박은식은 이탈리아와 비교해 이 나라가 단연 월등하다고 할 만한 한 가지 지리생태 요소에 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1910년대 중국 땅에서 망국의 한을 품고 한국사 원고를 집필하던 박은식에게 남에게 내주고 만 모국 땅은 육신의 고향을 넘어 영혼의 고향이었을 것이다. 찾아가 만나야 하는 어머니와 고향이라는 이데아는 바로 조선 땅에 있었다. 그런 그가, 모성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서해와 갯벌을 주목하지 않았던 건, 적이 안타까운 일이다. 20세기가 저물 .. 2021.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