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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

탄소 근대사가 필요하다-조효제 <탄소사회의 종말> 외

by 유동나무 2021. 7. 23.

주와 참고문헌만 약 100면에 이르는 조효제의 탄소사회의 종말(2020). 지금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탈탄소의 수평 전환과 탈성장의 수직 전환의 병행이라는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고 (자세한 논의는 그러나 없다) 전환을 위한 제1의 과제로 관점 세우기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기본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대목 관점 세우기에서 일본과 서구에 의한 근대 이식(근대화) 과정, 근대사회로의 체제변형 과정에서 백년 넘게 누적 형성된 전 사회적 행복관, 사회발전관, 가치지향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핵심적인 사항에 관한 논의가 놀랍게도 누락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울리히 브란트가 말한 제국적 생활양식을 착실히 수용한 한국이 어떻게 이것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관한 논의도 없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에 엔진이 빠져 있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인 결함이다. 삼성과 현대, SK를 위해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이 만드는 제품을 소비하는 이들, 심지어 경영진까지도 바뀌려면 이것이 바뀌어야 함에도.

 

얄팍한(조촐하다는 의미에서) 영국 예찬론이라 할 만한 박지향의 근대로의 길-유럽의 교훈(2018)은 근대화의 선봉장 영국의 산업혁명을 다룬다. 그런데 증기기관 개발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화석연료 시대를 열어 인류세를 열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증기선을 만들고 군함을 만들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1860년대 (박규수가 싸웠던) 제너럴 셔먼 호와 1850년대 (사무라이들을 깜짝 놀라게 한) 흑선을 만들었는지, 그 기술이 어떻게 제국주의의 동력이 되어 우리네 조상들(박지향 자신의 조상이기도 하다)을 억압했는지에 대한 관점과 논의가 전무하다. 20세기 초반 철도가 놓이면서 대전이라는 도시가 탄생한 것은 기술하면서도, 철도를 깔면서 석탄이 어떻게 얼마나 채굴되었고 어떻게 인류세가 일제강점기에 경험되었는지 논하지 못한다.

 

이러한 무능력, 무관심은 주경철의 대항해 시대(2008)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41절에서 유럽 해군의 발달이라는 중요한 테마를 다루면서도, 탄소를 내뿜는 증기선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7장에서 환경을 다루며 알프래드 크로스비의 생태제국주의론까지 동원할 줄 아는 학자가 제국주의에 의한 대기권-생태계 침탈에 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더군다나, 한국인 학자에게, (크로스비가 논한) 신대륙 생태계 파괴 역사, 신대륙의 피식민 경험이 자국 생태계의 파괴 역사, 자국의 피식민 경험보다 더 중요한 주제일 수 있는가?

물론, 나는 여기서 위에 언급한 책들의 장점이나 미덕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고 가자. 부족한 점은 부족한 대로 모두 양서에 속한다. 특히 조효제의 책은 압도적으로 우수하다. 그러나 백년 넘게 이어진 한국 근대화 역사를 인류세 관점으로 이해하려면, 우리에게는 다른 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