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석영 산문

제주도와 탈성장

by 유동나무 2022. 8. 29.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예고편을 보니, 제주도 이야기네? 간간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왔던 남방큰돌고래가 나올지 모르겠다.

제주도는 오늘의 한국이 압축된 섬 같다. 한국의 가지가지들이, 갖가지 역사와 욕망과 그 결과물들이 이 섬에 응축되어 섬을 헐떡이게 한다. 오사카와 연결되면서 조선반도에서 가장 먼저 탄소 근대의 격랑에 휩쓸리기 시작한 곳이 제주도이고, 1940년대 중반 조선을 분단국가로 만든 좌우대립, 좌우투쟁이 가장 맹렬히 폭발한 곳이 이 섬인가 하면, 21세기 들어선 인류의 지반 전체를 뒤흔들 기후변화의 충격이 어느 곳보다도 먼저 제주도의 바다와 산에서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하늘길이 막히자 최우선의 관광지로 우뚝 솟은 섬, 본토(육지)인들이 먹고 싸고 폐기하고 나서는, 그 똥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곳. 그래도 되는, 전 국민의 똥통. 그러나 말할 줄 알고 쓸 줄 아는 자 가운데 이 똥의 포화에 대해서 말하고 쓰는 이가 적다. 올레길 완주에 목매다는 올레꾼들, 인스타에 사진 올리느라 바쁜 MZ 세대인지 뭔지 하는 (일부) 탐욕적 세대, 놀고먹는 그들의 자금줄이 되는 부동산이라는 황금자산.

제주도는 유한과 무한을, 성장과 탈성장을 사유하기에 딱인 곳이다. 우리의 엉터리 지리감각, 공간감각으로 봐도 한눈에 이 섬의 지리적, 물리적 유한성을 직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유한하다면, 지구도 유한하다. 제주도에서 무한히 폐기물과 오염물을 퇴적할 수 없다면, 지구에도 마찬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정반대로 말해, 지구마저 그러한데, 일개 섬인 제주도임에랴!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제주도는 우리 백의민족이 지혜를 모아 새로운 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바로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알려줄 가늠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제주도 방문(여행/관광)권을 비-제주도민 1인당 11(이게 너무하다면 2)로 제한하고 체류 기간에 관해선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법령을 상상해보자. 이 법령이 통과될 수 있을까? 모두가 반대할 것이다. 이동, 여행의 자유 보장하는 헌법 운운하고 난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의 생태적 적정수용력에 관한 이해가 확산해 특정 회수로 자신의 방문을 (특정 기간으로 자신의 체류 기간을) 알아서 제한하는 비-제주도민의 수가 날로 늘어난다면 어떨까? 탈성장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탈성장의 한 면모이다.

 

 

 

'우석영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두: 아름다움 (1)  (0) 2022.11.17
생존이 번영이다 < 여유가 번영이다  (0) 2022.08.29
번역가의 의무?  (0) 2022.06.16
생태주의자 법정  (0) 2021.12.07
내가 생각하는 환경운동  (0) 20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