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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자

by 유동나무 2009. 12. 21.


오역자는 지식인의 탈을 쓴 일종의 범죄자다. 우리가 원문을 이해할 가능성을 파괴한 이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산문가 중 한 명인 아도르노의 위대한 산문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바로 [미니마 모랄리아]를 우리말로 번역한 최문규 씨다. 독일에 가서 박사까지 하고 서울대에서 교수까지 하는 양반이 이 모양이니, 우리가 과연 뉘를 믿을 수 있겠는가. (2005년에 김유동 씨가 새로 번역을 했지만, 그 품질은 최문규 씨의 것에 비해 얼마나 나은 것일지.)


그가 저지른 범죄는 이중의 것인데, 하나는 오염된 한국어를 생산하여, 독자들의 한국어를 교란시켰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엉성한 문장 조합으로 아도르노의 작품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파괴했다는 것이다. 물론 출판사 측과 이 법정에서의 피고인은, 부분적인 오역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며, 정역 역시 상당히 많다고 주장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머니 앞에서 50점짜리 성적표를 내놓고서 그래도 50점이 어디냐, 고 말하는 학생의 경우와 전혀 다르지 않다. 피고는 또 원래 아도르노는 번역하기 힘들다, 이 정도로 한 것도 굉장한 것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이가 어떻게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것인가. 그의 정치적인 목숨이 아니라, 실제 목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이 어렵다면, 차라리 번역하지 않는 것이 지식인이 지식인으로 남는 길이며, 지식인의 책무일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앎을 요구하는 대중 앞에서, 이것은 앎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요, 저것만이 앎의 영역 안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해야 할 이는 지식인이다. 다시 말해, 앎과 지식에 대한 겸허한 자세가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바탕이 되는 자격인 것이다.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자격요건은 엄정한 방식으로의 언어 구사다. 즉 말의 사용법, 운용법, 문법 등에 대해 제대로 된 감각을 지니지 못한 채 지식인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지식인의 자격요건을 지금 지식인 행세를 하는 이들에게 들이댔다가 큰 코 다친다. 이 두 기준은 그들 모두의 과실을 드러낼 것이매 그러하다. 그 모든 오역들, 그 모든 오역들을 읽는 과정에서 습득하게 된 오염된 언어의 사용들, 그것들이 떠받들고 있는 허상의 탑은 그러나 무너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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