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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영 산문24

이국 취향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의 만년 일기 모음집인 《행복한 책읽기》(문학과지성사, 1992)에는 글쓴이가 외국인을 싫어한다고 밝히는 일기가 등장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기술하자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의 목록에 김현은 “외국인 싫어하기”를 스스럼없이 집어넣고 있다. 30년 차이가 이렇게나 큰 것인가? 외국인 좋아하기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나로서는 김현의 반-윤스테이적이고, 반-비긴 어게인적이며, 반 글로벌적인 저 외국인 혐오 감각이 이물스럽기만 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픈 것이냐 하면, 전후(戰後) 국가의 한 ‘쪽’에서 태어나 병영 구조를 닮은 국민(초등)학교에서 호전성을 내면화하도록 교육받았던, 그러면서도 1990년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특수한 목적에서만 해외여행 비자가 발급되었던 국가 안.. 2021. 3. 30.
교실 안의 야크 친환경, 필환경, 이코프랜들리(생태친화), 자연친화. 다 좋은데, 이런 말 쫓기, 개념화하기는 사실, 자연의 것이 아니다. 자연에 가하는 불필요한 해(damage)를 가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섰다면, 저런 말들도 다 내던지는 게 좋다. 내가 앞으로는 친환경적으로 살겠다, 자연친화적으로 살겠다, 이런 마음은 좋은 것이나, 그걸 자꾸 표현하려 하고 확인하려 하는 것은, 반-자연적임을 알아야 좋겠다. 굳이 자신의 발심을 자타에게 보이겠다고 언어를 찾는다면, 자연의 흐름에 맞추겠다는 것, 자연과 어긋남이 없게 한다는 것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 어긋남이 없는(자연동화의) 삶, 그런 게 과연 2021년에도 가능할까? 는 이런 질문과 답변을 우리의 눈귀에 들려준다. 부탄의 이 산골마을(루나나, 해발 48.. 2021. 3. 11.
근대화 결혼을 하든 말든, 아이를 낳든 말든, 동성애를 하든 말든, 성전환을 하든 말든, 그 사람, 그 개인의 선택에 대해, 그 사람의 그러한 삶에 대해 축하해줄 것이 아니라면 입을 다무는 것, 입 다물고 그 선택과 삶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 각자가 각자를 자기(정체성)결정권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될 때 비로소 한국사회는 그토록 염원하던 근대화(modernization)를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런 사회의 성숙에 '근대'라는 라벨을 붙일 필요가 있을지는 또 모를 일이다. 지구의 약자들(자연물과 남반구의 빈국 노동자 농민들)을 부단히 착취하며 결국엔 과다 탄소 배출로 지구 시스템의 안정성마저 뒤흔들고 만, 유럽 발 악독한 기생충 문명이 이른바 '근대' 문명의 하나의 결정적 면모이.. 2021. 3. 4.
악의 평범성 죽어 명예를 얻은 이의 시집이 아니라 20년을 반지하 방에 살고 있는 어느 현역 시인의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요절”하고 마는 숱한 시집들과 나란히 두고 보면, 이것도 흉측한 풍경이 아닐 수 없겠으나, 전체를 조망하는 그런 똑똑한 시선을 거두고 소박한 시선으로 다시 보면,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기자가 글을 잘 쓰기도 했겠으나, 어떤 근거로 그가 “세상이 불치병에 걸렸다”고 하는지, 과연 나 자신은 “그 평범한 악”의 주체는 아닌지, 알아보고 싶은 내심들도 클 것이다. 하지만, 기사를 봐서는 세상이 걸린 불치병의 내용이 거의 드러나지는 않는다. 무엇이 불치병이고, 무엇이 악일까? 기사에 적혀 있기론, 광주학살 피해자와 세월호 피해자 등에 대한 .. 2021. 2. 13.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병 앤쏘니 키드만Anthony Kdman은 그의 책 [고속 협로에서 제정신으로 살기[제정신 놓지 않기]: 21세기의 정서적 행복Staying Sane in the Fast Lane: Emotional Health in the 21t Century]에서 ‘테크노스트레스technostress’라는 새로운 질병을 말한다. 벌써 그의 책 제목만 봐도, 그가 말하는 테크노스트레스의 실체가 대강 짐작이 간다. 아니 새로운 터치 형 신 디바이스device들의 도래를 목격하고 있거나 체험하고 있는 이들은 이게 무엇일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키드만은 우리의 뇌가 “변화에 저항하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선호하며 최대한 사태를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고전적인 뇌의 성향과 새로운 정보의 신속하고 .. 2011. 11. 7.
물에게 준 소리 (22) 온생명 공부는 나 공부로부터 2011년 8월 5일, 이번 주 금요일 나사NASA에서는 태양에너지로 발전하는 주노를 목성[주피터]에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주노는 앞으로 만 5년을 이동해 2016년부터 탐사를 시작할 예정이라는 소식. 나사 소속 한 연구자는 이 탐사를 통해 태양계 내 행성들의 탄생 과정을, 그리하여 지구의 탄생 과정을 알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피력했다고 전해진다. 태양계 내에서 태양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덩치를 지닌 행성인 이 목성은 (태양 외 모든 행성들과 달들을 총합해도 이 목성의 질량에 못 미친다고 하는데) 태양 형성 이후 가장 먼저 형성된 행성이라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연구자에 따르면 주노의 주된 관심은 ‘우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좀 달리 말하면, ‘우리 자신.. 2011.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