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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영 산문

교실 안의 야크

by 유동나무 2021. 3. 11.

친환경, 필환경, 이코프랜들리(생태친화), 자연친화. 다 좋은데, 이런 말 쫓기, 개념화하기는 사실, 자연의 것이 아니다. 자연에 가하는 불필요한 해(damage)를 가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섰다면, 저런 말들도 다 내던지는 게 좋다. 내가 앞으로는 친환경적으로 살겠다, 자연친화적으로 살겠다, 이런 마음은 좋은 것이나, 그걸 자꾸 표현하려 하고 확인하려 하는 것은, -자연적임을 알아야 좋겠다.

굳이 자신의 발심을 자타에게 보이겠다고 언어를 찾는다면, 자연의 흐름에 맞추겠다는 것, 자연과 어긋남이 없게 한다는 것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 어긋남이 없는(자연동화의) , 그런 게 과연 2021년에도 가능할까? <교실 안의 야크>는 이런 질문과 답변을 우리의 눈귀에 들려준다.

 

부탄의 이 산골마을(루나나, 해발 4800미터)에서는 노예동물과 반려동물의 차이가 없다. 언뜻 사람이 부리는 동물 같은데, 그 동물은 모두 온 마을의 친구이고 각 가정의 가족이다. 마을 내 모든 동물에는 이름이 있는데, 사람이라면 이름이 있듯, 그러하다. 아니,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내주는 야크는 사람(목동)보다 훌륭한 존재라는 사상이, 저 산마을에는 있다. 마을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야크 한 마리를 무작위로 도살하게 되는 날이면, 그 날은 마을 전체가 애통에 잠기는 날이다. 삼겹살이 곧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의 주역이라는 어느 동쪽 나라의 이야기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이지만, 부탄의 저 산마을에서는 분명한 이야기다.

자연친화적 삶을 살겠다 하는, 그러나 도시의 삶에 푹 젖고 젖어버린 우리를 상징하는 것은 산마을의 방문자 청년-교사 유겐이다. 노스페이스 자켓을 입고, 식당에서 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조금만 몸이 힘들어도 화를 버럭 내며, 사는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더 나은 곳을(미국을, 독일을, 호주를) 찾아 방황하는가 하면, 산의 신령을 더는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 자신의 현신이며, 영화의 여정 내내 우리가 편히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우리 대신 그가 모든 낯선 것을 경험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그-우리를 향해 자연에 동화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소녀 살돈이 가르쳐준다.

언덕배기에서 <야크의 노래>를 부르는 살돈의 입에서는 실로 놀라운 이야기가 줄줄 솟아 나온다. 살돈은, <야크의 노래>를 만물에 바칠 뿐이라고 말한다. 검은목두루미가 듣는 이가 누구든 개의치 않고 노래하듯, 자신도 그저 만물에 바칠 뿐이라고. 모든 사람, 모든 동물과 신, 골짜기의 영혼들에게.

도시의 외방객이 <야크의 노래>를 배워가는 과정을 그린 이 놀라운 영화를 딱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살돈은 검은목두루미이지만, 유겐은 야크가 아니다. 무슨 까닭인지, 유겐은 야크의 심성을 잃어버리고는 말았다.

그래서 살돈은 언제까지나 마을과 함께 살고자 하고, 살돈과는 달리 유겐은 자신을 키워준 마을(도시)만이 아니라 나라도 버리고 떠난다.

가장 사랑했던 야크를 잃고 <야크의 노래>를 지었던 촌장은, 산마을과 부탄을 떠나는 유겐에게 돌아오라, 루나나의 아들이여, 나의 야크여라고 노래 부른다. 촌장의 아내가 죽으면서 같이 죽었던 아내의 태중의 아들이, 만일 살았더라면, 유겐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촌장에게 유겐은 어쩌면 죽은 아들의 현신이고, 가장 사랑했지만 잃고 만 야크의 현신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에, 유겐은 시드니의 한 펍에서, 울며 <야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교실 안의 야크>는 부탄이 낳은 위대한 작가(파우 초이닝 도지Pawo Choyning Dorji, https://www.facebook.com/pawocd/)가 자연 동화의 삶을 잃고 만 전 세계 도시인들에게 보내는 읍소의 노래인지 모른다. 아니, 지구는, 부탄의 설산은 부탄의 이 작가의 손과 입을 잠시 빌어, 우리에게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오라, 나의 야크여

그러나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보고 힐링이 되었다고 하는데, 도무지 모를 소리다. 촌장과 살돈의 부름이, 유겐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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