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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11

우리 모두의 일, <기후정의선언> (마농지, 2020)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소우주에서 살기 마련이다. 같은 시공간에 산다고 믿지만, 그건 믿음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렇게 각자의 지붕 아래 살던 이들이 어느 날, 일개의 바이러스로 인해 한 지붕에 모이게 되었다. 이제 각자는 더 이상 각자가 아니었고, 모두가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압력을 받으며, 공통의 단어들, 즉 봉쇄(lock down), 격리(quarantine) 같은 단어들을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였고, 바이러스와 면역, 박쥐와 천산갑에 관한 공부를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로 받아들였다. 코로나의 지붕이 하나의 작은 지붕이라면, 기후(위기)가 만들어낼 지붕은 거대 지붕이어서, 그 지붕은 태양에 비교할 만하다. 우리가 언제 바이러스나 면역에, 숙주동물에 지금처럼 해박했던가? 앞으로 수년 내에 온실가.. 2021. 2. 14.
케이트 에번스, <레드 로자> (산처럼, 2016) 100년 전 또는 110년 전 이야기가, 그것도 외국인의 인생 이야기가 AC(After Corona) 시대를 사는 이곳의 우리에게 얼마나 의미 있을까? 하지만,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야기나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일행이 대 일본군 전투에서 승리한 이야기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로자 룩셈부르크가 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에서 경험했던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훨씬 더 의미 있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거대 문제’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거의 소멸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로자 룩셈부르크가 평생에 걸쳐 붙들고 싸웠고 성숙한 시기에 그 본질을 꿰뚫어 보았던 무제한적 자본주의 또는 자본이라는 괴물이라는 ‘거대 문제’는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코로나 팬데믹이나 기후 위기, 산업현장의 중대재해 같은 사안으로 여전히 .. 2021. 2. 14.
안셀름 그륀, <길 위에서> (분도, 2020) 행복하려고 태어난 걸까? 고생하려고 태어난 걸까? 삶이란 무엇일까? 독일인 신부 안셀름 그륀은 삶이 수행이자 순례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거처는 하늘이니, 지상의 삶이란 집 없는 자, 고향 없는 자, 고국 없는 자, 이방인의 방랑(wandering)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현세의 삶은, 이 현세에만 허여된 특별한 여행에 불과하다. 이렇게 확고하게 믿고 사는 사람이기에, 그륀의 걷기는 범상한 사람의 걷기가 아니다. 아니, 이런 기이한 믿음의 신봉자이기에, 이 사람에게 걷기는 묘한 아우라가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자기가 지금 ‘방랑의 운명’에 처했다는 것, 자신의 유일한 고향은 하늘이라는 것, 그 진리를 되새기고 다시 깨닫기에 걷기만 한 방편도 없다는 것. 그것이 안셀름 그륀의 생각이다. 걸으면, 이러한.. 2021. 2. 14.
윤동주,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동장군이 잠시 물러간 자리, 잠시 푹해진 날씨에 너도나도 뛰쳐나와 네이버 지도에 붉은색 표기가 곳곳에 즐비하다. 어디를 그리들 가시는지? 점심 먹고 잠 바다에 잠시 빠졌다가는 서둘러 길로 나섰으나, 뒤늦게 미세먼지 상태 확인하고는 곧바로 포기하고 리턴. 집에 와서는 어젯밤 읽던 윤동주 시집을 마저 읽는다. 뽕나무밭이 어떻게 푸른 바다로 변할 수 있을까? (상전벽해桑田碧海) 그러나 한국을 떠나 있던 2004년~2013년, 이 땅에서 정말로 상전벽해 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윤동주가 갑자기 주목을 받으며, ‘뜬’ 것도 아마 이 시기일 것이다. 정본 윤동주 전집이 출간된 것이 2004년이고 윤동주 평전이 나온 것이 2014년이니 얼추 들어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2016년 이준익의 영화 가 나오면서 .. 2021. 2. 14.
김정숙 <밥상 아리랑>(2020, 빨간소금) 조선 사람들. 푸른 눈 가진 사람들이 만든 노벨상에 집착하지 말고 조선어 문학상 제정하고 조선어 문학 대전을 하면 좀 좋나? 북. 남. 연변. 그리고 해외 교포 모두 참여해서 기량을 겨뤄보면 좋지 않나? 1/3, 1/4 짜리 김수영 문학상이니 동인 문학상이니 받아서 뭐하누? 조선어 전체 문화의 성숙에 북한, 연변 문학이 기여한 바를, 나랑 모어를 공유하는 그들의 성취를 나는 알고 공부하고 싶다. 신채호 전집을 펴낸 연변대학교 조선문학연구소를 나는 남한 대학교 문학 연구소들보다 더 높이 산다. 음식도 마찬가지. 섬 같은 곳에 갇혀 고려 때부터 이어져온 민족 식 전통의 오직 일부만을 접하고 죽는 원통함이 있을까 나는 두렵다. 은 북조선을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재일교포 김정숙의 글(북조선 식문화 기행문)을 .. 2021.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