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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영 산문

지구의 날 단상

by 유동나무 2021. 4. 22.

 

Earth Day. 1970년 태평양 동쪽 나라, 미국에 살던 이들이 만든 날이다. 한국말로 지구의 날이라 한단다. 남들이 지구의 날이라 부르니, 나도 그저 그러려니, 지구의 날이라 부른다.

지구의 날? 무슨 말일까? 지구가 주인인 날? 지구를 위한 날? 지구를 생각하는 날? 지구의 가슴에(석유를 뽑겠다고 해저에, 고속철을 깔겠다고 산에) 대못을 서슴지 않고 박아온 사람들을 눈감아주고, 그들과 같이, 그들 곁에서, 아니 그들에게 기생하며 사는 우리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생각해보면, 지구를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날, 지구를 애도하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40년 수령이 넘었다고 전부 베겠다고 덤비는 이성을 상실한 개새끼들을 이웃으로 둔 우리로서는, ‘지구라는 단어를 들으매, 대기권 밖에서나 그 형태가 보이는 추상적 성격의 구형 물질이 아니라, 지구의 품에 깃들어, 지구와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피해자로서 법정에 서지 못하는 말 못하는 모든 약자들, 지구의 딸들을 환기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Earth Day가 그런 지구의 딸들을 애도하는 날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구의 날, 지구를 생각하는 날. 우리가 우리의 모천인 지구와 닿은 채로, 지구에 안긴 채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날. 그런 날은 1년에 하루가 아니라 365일이어야 할 것이다.

지구의 날, Earth Day는 그래서 무의미하다. 아메리칸, 북대서양인들의 자기반성으로 시작된 Earth Day는 유학 전통을 중시했던 동쪽의 민족에게는 더욱더 무의미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에 태어난 횡거 장재는 이렇게 썼고, 500년 전에 태어난 퇴계 이황은 68세에 장재의 글(아래 대목이 실린 <서명>)의 일부를 <성학십도>에 담아 어린 왕 선조에게 바쳤다.

 

지구에 가득 들어찬 것은 나의 몸이며, 지구를 이끄는 원리는 나의 이다. 지구 안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나의 동포이며, 지구 안의 모든 사물이 나와 같은 족속이다.”

 

우리가 이런 민족이다. Earth Day는 그래서 우리에게 더더욱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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