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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익 선생님

by 유동나무 2010. 1. 6.


11월 19일, 어제는 전우익 선생님 기일이었다. 한때의 유명작가, 농부-작가, 지금은 작고하신 이 분을 기억하여, 그 사모하는 마음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던 이는 아마도 많지 않을 터이다. 하워드 진 같은 미국인에게 소로우가 마음속으로 모시는 분으로 남아 있는 것과 똑같이, 한국인에게는 먼저 살았던 어떤 한국인이 그 마음에 모시는 분으로 남아 있어야 하리라. 하워드 진이 해월 최시형 선생을 마음속에 모시며 산다고 말하면 우리가 다소간 의아할 것처럼, 한국인 중 뉘 있어 소로우를 마음에 모시고 산다고 말한다면, 이 말을 듣는 미국인은 좀 의아해할 것이다. 존경하는 이, 마음속에 모시는 이는, 생존해있으면 더욱 좋고, 아니면 작고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다시 말해 내가 한 “현대적 경험”을 어느 정도 함께 한 한국인이면 좋으리라. 그리고 그런 한국인은 소수긴 하지만 있어서, 우리는 저 멀리 라싸로, 메카로, 예루살렘으로, 플럼 빌리지로, 타고르와 간디의 아슈람으로 떠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 개 촌부. 일 개 평민. 일개 흙투성이. 그러나 몇 십 년간 키워낸 얼맘으로 글을 쓰신 이여. 낮은 자리, 흙이 있는 자리에 우리와 늘 함께 있고, 우리를 늘 깨우치시는, 우리의 스승이시어. 선생을 기억하며, {목수의 가르침}이라는 선생의 글 중 한 대목을 다시 읽어본다.

 

 

“그(니시오카 스네가즈)는 기술이란 말을 하지 않고 기법이라 해요. 기술이란 자연 법칙을 인간의 힘으로 정복하려는 거고, 기법은 자연의 생명 법칙을 얼마나 잘 살려 가느냐 하는 건데, 그렇게 하다 보면 손해 보고 고집쟁이란 말만 듣는데 세상의 욕이나 칭찬 같은 건 돌볼 사이도 없고 오직 신념대로 살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집을 지어 보고 뜯어 본 다음에 집을 알게 되었답니다. 우리들의 소망은 진짜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은 거라고 했습니다.” 

 

       

2007.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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