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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논리, 기품

by 유동나무 2010. 1. 6.



“정언적 이다”를 고집하는 글, 그러니까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결국, 어쩔 수 없이 읽는 이를 가르치게 되고 마는, 교화성을 품을 수밖에 없는 글”은 그 담론의 단언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일정한 공격성의 향기를 품을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 길을 걷게 될 경우라면, 이러한 글도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유형의 글들은 “정언적 이다”의 꼴에 여전히 머물고 이 꼴을 여전히 취하지만, “정언적 이다”의 철창을 바수어버린 경우인 것. 이를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정언적 이다를 넘어선 정언적 이다”라고 부르면 좋을까. 첫째의 경우는 그 글이 철학적 깊이를 확보할 때다. 이러한 “이다”는 우리를 깨우치면서 또 우리가 더 많은 질문으로 나아가게 하기에,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사유를 닫는 대신 열어준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작게는 이웃관계, 크게는 사회, 더 크게는 이 지구공동체가 움직이는 바탕적 힘, 논리, 체계에 대한 정밀하고 논리적이며 절곡한 비판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否定”의 정신으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 우리는 본래 세계에 대해 늘상 “無”이고 “否定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일찍이 사르트르가 얘기한 그대로다 - 확인케 하고 그 정체성의 내적, 본래적 요구를 충족케 하는 경우다. 이 비판이 너무도 절곡하고 적실하여, 우리가 그 힘, 논리, 체계를 부정하지 않고는 하나의 주체적인, 양심을 지닌 인간으로서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이 우리의 내면에서 자명한 것으로 여겨질 때, 우리가 그러한 느낌에 젖어들 때, 이 비판은 우리에게 절대 공격적인 느낌을 줄 수가 없다. 이 비판은 결국 (그 글의) 논리의 힘으로, (읽는 이의) 논리를 감싸고 있는 마음까지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글이 이러한 작용을 했을 경우, 이렇게 할 수 있게 한 것은 논리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그 외의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데, 이를 나는 “기품”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사물, 현상, 세계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 태도, 입장과 그것들의 내적 원리를 찾아내고 분석해내는 논리적 규명은 사실상 글 내부에서 혹은 정신 내부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어서, 기실 우리의 마음까지도 송두리째 사로잡는 글쓰기에는 이 둘이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그 구조 안에서, 그 “이다”의 내부에서 증명되어 있다. 이 시선, 태도, 입장은 늘 자기 성찰적 태도를 기반으로 성립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유형의 글쓰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성으로써 감지하는 논리 이외에 그 무엇이 있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내가 말한 글의 “기품”이며, 달리 말하자면, 세계를 대하는 한 개체의 내면적, 정신적 태도의 기품, 자기 성찰적 태도의 기품인 것이다. 이러한 기품이 확보된 글에 우리는 “웅숭깊다”는 표현을 쓸 수 있으리라. 이것을 웅숭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그러한 글의 경우, 충분한 “내적 대화”를 통해 글이 건축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세계에 대한 비판적 사회과학적 글쓰기, 혹은 사회비평적 글쓰기의 근본에도 역시 철학의 요청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살면서 “정언적 이다”를 찾지 않는 이는 세상에 없다. 살면서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세계에 똑바로 서서, 똑바로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결국 스승이며, 스승은 결국 말씀이며, 말씀은 결국 “정언적 이다”의 꼴을 취할 수밖에는 없다. 이것을 찾는 우리 -쓰는 사람, 읽는 사람, 이 둘 다로서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에 깃들어 있는, 철학함의 깊이, 정신의 기품과 혼연일체된 과학이다.

 

 

2007.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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