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전 산문

배운 꼴통

by 유동나무 2010. 1. 21.

이 사람도 이곳에서 논문이라는 것을 쓰면서, 논문 맨 앞에 부치는 논문초록이라고 하는 것을 써보았다. Abstract 라 불리는 이것은, 내가 논문을 제출한 대학에서는 350자 이하로 쓰게 되어 있는데, A4 한 페이지가 찰까 말까 한 짧은 글이다. 짧은 글은 금방 쓰지만, 긴 글은 어렵게 쓰리라, 짧은 글에는 적은 수고가, 긴 글에는 많은 수고가 들어가리라는 세간의 가정과는 달리, 써본 이는 알겠지만, 정말 쓰기 힘든 것, 노고를 필요로 하는 것은, 긴 것보다는 짧은 쪽이다. 지도교수님께서 얼마나 이 Abstract를 까다롭게 생각하시는지, 이 350자를 몇 번 고쳐 썼는지 모른다. 수백 번이라면 거짓말이고, 수십 번이라면 참말이겠으나, 수십 번이라는 구절에, 이 사람은 만족을 못하겠다, 그만큼 고생을 해서 썼다. 

그런데 한국 대학에는 도대체 논문에 관해 어떤 기율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근자에 보게 되는, 한국어로 된 논문초록은 정말이지 가관이다. 이건 순 배웠다는 놈들이 더 꼴통이네, 하는 말이 튀어나오게 하는 엉터리 수작들인데 (그 숱한 비문들, 엉터리 수식어, 불필요한 장문, 불필요한 만연체), 대관절 어떻게 그 엉터리를 버젓이 초록이라 남 앞에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대관절 얼마나 뻔뻔하기에 그 엉터리를 논문의 독자들에게 보일 수 있단 말인가. 

대학원에서 작성되는 논문은 논문 작성자와 논문 지도교수의 공동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그렇다면, 이 <배운 꼴통> 뒤에는 또 다른 배운 꼴통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이 사람의 생각이다. 십 수년 전에 한국에서 다녔던 모교 (대학)의 교수 한 분을, 그 모교가 운영하는 병원의 복도에서 만났다. 그 교수 왈,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정확해. 그 뒤로 이 문제에 대해서 십 수년 생각해보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러나, 이런 말을 어떻게 한국어 사용자가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한국어는 그럼 영어보다 미개한 언어란 말인가. 그런데 작금 한국의 대학원에서 논문 쓰는 이들은, 그런 소리를 듣게끔, 그런 소리를 당연한 소리로 들리게끔 하고 있다. 

한국어도 우수한 언어라는 것을 보여주자. 정치한 문장을 쓰자. 좋은 논문은 <투명한 글쓰기>의 원칙를 실현하는 논문이다. 난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난이는 투명/불투명과는 다른 원리다. 문장을 엄정하게 다룰 줄 모르는 이는 배운 이라 불릴 수 없다. 한 언어의 달사가 되지 못한 이는 자신을 글쟁이나 문사로, 혹은 학자로 소개하면 안 된다. 

그러나 쓰기의 어무이는 읽기다. 즉 디지털 형식으로든 종이로든 출판된 것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출판편집자야말로 (필자가 아니라) 모든 언중의 글쓰기에 책임이 있는, 그들의 글쓰기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막중한 존재다. 그들은 한 언어의 관리인들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편집자들이 많은 듯하다. 많아, 비문들이 버젓이 출판되고 그것이 또 다른 꼴통을 양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 한국어는, 악순환이라 부른다. 

   

'이전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느껴 우는 기러기 해가 뜨니 비로소 아침이네  (0) 2010.01.25
Avatar  (0) 2010.01.22
쉽게 쓴다는 것에 대하여  (0) 2010.01.06
전우익 선생님  (2) 2010.01.06
철학, 논리, 기품  (0) 2010.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