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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

폴 호컨, 《탄소라는 세계》 (이한음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5)

by 동류실 2026. 8. 23.

1. 한국 출판사의 책 제목 선정은 실수가 아닐까. 원저작자와 원출판사가 <탄소: 생명에 관한 책>이라는 기가 막히는 제목을 뽑았는데,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다니.

2. 폴 호컨. 1946년생. 올해로 만 80세이고, 이 책은 만 79세에 출간된 책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탄소라는 세계>는 노년기의 작품이다. 나는 나이든 이가 쓴 이런 책을 좋아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웅숭깊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 이 장이 보여준다.

3. 번역자 이한음은 이 마지막 장을 잘 번역했다는 점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만하다. 사실 이한음의 번역은 상당히 매끄럽고 좋다. 그러나 그는 기존 번역어에 지나치게 굴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라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4. 책의 마지막 장에서 폴 호컨은 이렇게 쓴다. “지구의 모든 존재는 첫 번째 고려 대상이다. 두 번째는 없다...우리의 삶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함께한다는 본능적인 깨달음은, 전혀 새로운 자아 경험, 변혁이다...모든 존재와 떼어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유일한 길이다.” 이 정도의 명쾌하고 훌륭한 결론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자아 경험, 새로운 인간 정체성이다. 인간이 지구의 중요한 손가락이고 중요한 눈이라는 자각. 인간의 전진은 전체의 전진이라는 자각.

5. 문제는 전체를 이루는 모든 존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폴 호컨은 지구의 모든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도 있게 생각해본 것 같지 않다.

6. “지구의 모든 존재라고는 말하지만, 폴 호컨은 생물본위적인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4<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러시아 유전학자 트리포노프의 생명 정의 변이를 지닌 자기 복제라는 정의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폴 호컨의 생명관을 확인할 수 있다. 호컨은 그렇게 정의해버리면 컴퓨터바이러스도 생명체였다면서 중요한 논의를 멈춰버린다.

7.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다.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생물학과 마찬가지로 물리학도 생물과 무생물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72p)는 것을. 폴 호컨도 4장에서 이 주제에 천착한다. 그러나 그는 캐럴 클러랜드에서 해답을 발견하고는 너무 성급히 결론을 내려버린다. 클러랜드에 따르면, 생명을 정의해서는 안 되고 생명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생명을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 계라면 생명이라는 결론. 호컨이 제시하는 생명의 사례는 생태계, 미생물 공동체, 원주민 문화, 유서 깊은 도시, 지구 또는 가이아다.

8. 그러니까 그는 내가 <그 존재만으로>에서 언급하는 범람하는 사물(기물-상품과 기술물, 쓰레기, 온실가스 등)들의 문제를 생명과 연관지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폴 호컨의 정신세계에서는 생명은 보존해야 하는 것으로서, 좋은 것, 보호해야 하는 것, 그런 것으로서 시스템이다.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고 보호할 수 없는 것, 이를테면 물이라는 시스템은 생명인가, 아닌가? 강이나 바다의 여러 생물 요소를 전부 뺀 액체 H2O는 생명인가, 아닌가?)

9. 만일 그렇다면, 그 생명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사물의 범람>이 곧 보호해야 하는 생명의 목을 조르는 현실을 타개하지 않고 가능할까? 예컨대 종이, , 휴지, 가구, 음악, 스낵, 소고기, 콩 같은 <범람하는 사물>에 대한 가공할 수준의 수요(욕망)라는 문제의 해소 없이 세계의 숲을 보호할 길이 있을까?

9. 신유물론은 쓸모가 있어야 한다. 신유물론이라는 모호한 덩어리를 이루는 온갖 이야기들은 폴 호컨이 <탄소라는 세계>에서 펼치는 지구적 문제와의 대결 의식에 이어져야 한다. 반대로 20세기 자연보호론의 전통에 있는 이들은 신유물론과 조우해야 한다. 어떻게 이 둘은 연결될 수 있을까? 폴 호컨이 말한 지구의 모든 존재를 다시, 다르게, 생물중심주의와 생태학이라는 우물에서 훌쩍 빠져나와, 생각하는 것밖에는 없다. 이를테면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라는 허깨비 놀이를 멈춰야 한다. <그 존재만으로>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시멘트에는 바다의 향기가 배어 있다.”

10. <탄소라는 세계>의 편집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뭐야 이 사람, 할 듯. 책의 원제로 돌아가보자. 호컨은 <생명에 관한 책><탄소>를 매개로 <생명life>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 자체가 life에 경도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가치하다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가치 있다는 말이다. 다만 그렇다면 지구의 모든 존재같은 표현은 조심해서 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