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예술의 가치
이 모든 이야기는 어떤 함의를 지닐까?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치 있는 예술을 알아차리고 예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할까? 아니면 기술권 비대화에 기여하는 예술, 상품 과다 생산 운동에 동원되는 예술과 디자인, 인간의 부당한 행동이 연루된 예술의 얼굴을 알아차리는 것이 급선무일까? 그리하여 예술 창작 자체의 가치를 재고하고 창작을 자제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일까? 거주 가능 지구가 위태로운 시대에, 식량의 공급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화재와 홍수로 주택이 전소되는 상황에서 예술이란 다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질문에 정답은 있을 수 없기에 이러한 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좋은 혼란이다. 일단 이러한 질문을 다 던져봐야 한다. 특히 예술 생산 공정의 흉측한 모습이 공개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예술을 자동으로 추구하는 정신적 경향의 소유자라 그 방법이 무엇이든 예술은 무조건 생산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몇 가지 합의점에 이를 수 있다.
첫째, 예술은 인간과 비인간의 공동 작품이기에 그 창작 과정에 참여하는 비인간 존재에 대해 존중과 연민의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 붓은 도구가 아니고, 물감은 재료가 아니다. 이런 언어 행위부터 중단해야 한다. 피아노 안쪽의 현(스트링)을 만드는 데 동원된 구리, 향판(사운드보드) 제작에 희생된 가문비나무. 이들의 존재 가치와 능력을 존중해야 한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과도하게 가문비나무가 벌목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런 태도를 갖출 수 있다면, 예술 생산 과정에서 어떤 것이 부당하고 어떤 것은 허용되어도 좋은지에 관한 공통 감각 역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어떤 예술은 구리나 가문비나무 같은 지구의 동료들(earthlings)이 그 자체의 깊이, 내면성, 주체성, 존재 목적과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진리를 알아차리게 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예술 자체가 인간이 지구에서 발견한 물질, 물질 경험에 대한 (인간의) 탐구 양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은 특정한 성질과 성향을 지닌 지구 물질에 의존하고, 그 물질의 성질과 성향을 은연중에 공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리하여 해당 물질에 대한 앎에 접근하는 통로가 되기 쉽다. 라오콘상이나 석굴암의 석불이 미적 감동과 충격을 자아내는 것은 그 창작자들의 탁월한 미적 감각 때문만은 아니다. 그 형물을 이루는 바위 자체가 주는 미감, 오래됨(변하지 않음과 견고함)이라는 성질이 주는 미감은 그것을 바라보는 미적 경험에서 결코 적은 부분이 아니다. 이런 깨달음은 바위, 돌, 광물의 실재를 알아차리는 데 미미한 도움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진리로 들어가는 입구는 될 수 있다. 예술가는 과학자, 철학자와 동맹을 이루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술은 힘이 세다. 예술은 탈도덕적, 탈규범적, 탈논리적, 탈법적인 개별자다. 예술은 급진적으로 자율적이고 최고로 자유로운 존재물이다. 감상자는 진정으로 예술을 경험하는 한, 규범과 규칙이 가득 찬 인간세계에서 빠져나온다. 그는 잠시 존재하기를 멈춘다(마르쿠스 가브리엘, 2022). 그리고 그 경험이 이어지는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자유와 창조의 감각에 감염된다. 이는 곧 감상자가 예술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과정에 중대한 참여자가 됨으로써 예술의 급진적 자율성, 탈규범성과 탈법성에 자연스레 물드는 것을 뜻한다. 예술은 인간을 자유로운 자, 자율적인 자로 재정립한다. 그렇기에 예술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기성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인 자들의 관점일 뿐이다. 인류세라는 초유의 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는 기성 질서의 해체로만 가능하다. 그 창조와 해체는 새로운 예술의 전진, 새로운 자유인의 탄생과 함께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 예술과 인간에 목마르다.
*<인류세의 예술>(2025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주제연구포럼 자료집, 이후의 미술(관) 수록)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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