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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었다.

<심청가> 중 <중 타령>과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

by 동류실 2026. 8. 23.

 

<심청전>이라 하면 이야기가 되고, 같은 그것을 <심청가>라 하면 판소리가 된다. 한국에서 무당의 사회적 역할은 (굿)shamanic ritual common field에 모인 이들을 울고 웃게 하는 것인데, 이런 판의 프로토콜은 훗날 고스란히 판소리로 옮아갔다. , 소리꾼은 소리판에 모인 청중을 울고 웃게 하는 직능을 수행하게 된다. 소리꾼이 그 직능을 잘 해내든 말든, 그가 익혀야 하는 대본은 소리꾼의 그런 역할이 수행되도록 직조되어 있다. <심청가>도 물론 그러한데, <중 올라간다>라는 말(정확히는 노랫말, 소릿말)로 시작되는 <심청가>의 한 대목(<중 올라간다> 또는 <중 타령>)은 애끓음 대목이라기보다는 웃음 대목에 가깝다.

각설, <중 올라간다> 또는 <중 타령>의 서사는 무엇일까? 몽은사 화주승이 개천에 빠져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심봉사를 구해주고는, 그예 그의 집까지 데려다준 후, 소맹인 상대의 사정을 딱히 여기는 척하며 (공양미 삼백석 시주하면 니가 눈을 떠!) 심봉사를 우려 먹는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심봉사와 화주승 사이에 오가는 공양미 시주의 효용성 관련 대화인데, 대개의 소리꾼은 이 부분을 희극적으로, 즉 그 해학미를 살려 처리하지 못한다. 대본의 행간에 담긴 요청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박동진의 심청가는 여전히 독보적으로 보인다. (이 사람 외에 또 누가 있을지?)

그런데 만약 나처럼 이 <중 타령> 대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대목을 자기 앨범에 싣는 소리꾼들이 수십 명이라면 어떨까? 그래서 스포티파이 등에 <중 타령>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수십 개의 판소리 소리 파일이 곧바로 뜬다면 어떨까? 물론 <중 타령>은커녕 <심청가>의 아름다움과 빼어남조차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판국이기에 이런 일은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존 레논의 명곡 <Across the Universe>를 상대로는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서 우리는 수십 개 다른 버전의 이 곡을 만날 수 있다. (<Yesterday>2,000편이 넘는 버전이 있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적은 것인가?) <Across the Universe>는 대단한 곡은 아니다. 멜로디가 지나치게 단순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계속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것은, 노랫말의 도저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운 깊이 때문일 것이다.

존은 어느 날 아내 신씨아 레논과 말다툼을 하고는 영 잠을 못 이루다가 이 곡을 쓰고 잠에 든다. 아마도 그날 밤, 실타래처럼 엉킨 감정과 생각이 그의 뇌에서 끓어오르다가 그의 손끝을 타고 이 곡으로 흘러내렸을 것이다. <Across the Universe>의 섬려한 노랫말에는 이러한 심리적 복잡함과 긴장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

 

종이컵으로 끝없이 쏟아지는 비처럼

말들이 흘러나오네

우주를 가로질러 미끄러지며

거세게 나아가네

 

슬픔의 웅덩이, 기쁨의 파도가

열린 내 마음속을 표류하며

나를 사로잡고 어루만지네

 

신성한 스승(구루 데바)께 영광을,

그 어떤 것도 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 (×4)

 

수백만 개의 눈처럼 내 앞에서 춤추는

빛의 파편들의 이미지가

우주를 가로질러

끝없이 나를 부르네

 

우편함 속에서 쉼 없이 부는 바람처럼

굽이쳐 흐르는 생각들이

우주를 가로질러 나아가며

눈멀어 넘어져 뒹구네

 

신성한 스승께 영광을,

그 어떤 것도 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 (×4)

 

웃음 소리, 삶의 그늘이

열린 내 귀로 울려 퍼지며

나를 자극하고 초대하네

 

수백만 개의 태양처럼 내 주위에서 빛나는

끝없고 불멸인 사랑이

우주를 가로질러

끝없이 나를 부르네

 

신성한 스승께 영광을,

그 어떤 것도 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 (×4)

신성한 스승께 영광을,

*

그러니까 말들과 생각들은 우주를 가로질러 나아가는데, 빛과 사랑은 우주를 가로질러 내게 온다.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그 빛과 사랑은 끝없이 나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수백만 개의 태양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어떻게 수백 만개의 태양과도 같은 사랑이 내 주위에서 빛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끝없고 불멸인 그 사랑은 누구의 사랑일까? 그런 사랑이 있다 해도, 어떻게 그 사랑이 내 주위에서 빛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 이러한 생각의 표현물은 놀라운 성취임이 틀림없지만, 존 레논 한 사람의 성취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 곡은 하나의 빛이 되어 수많은 갈래로 뻗어 나갔고 존을 필멸의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 곡의 영적 분위기를 잘 살린 이로는 AURORA, Dixie Maxwell, 정반대의 분위기로 이 노래를 살렸고 기타 소리가 좋은 곡으로는 Alternative Radio, Steady Shakin’의 것을 추천. 북쪽의 우울하고 영적 분위기의 기름을 쏙 빼낸 버전으로서 가장 세속적인 것으로는 Barbara Mendes 버전을 꼽을 수도 있겠다(남미 애들은 못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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