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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영 산문

내가 생각하는 환경운동

by 유동나무 2021. 6. 3.

 

환경운동을 먹고 살 만한 자의 운동, 또는 한가한 자의 운동이라고 생각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기후니, 탄소니, 산림청의 30억 그루니, 채식이니 동물권이니, 당장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사람이라면, 눈 돌리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한 나는 사람이 우선이고, 사람 외 자연은 그 다음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으니, 사람 아닌 것까지도생각할 정도로 여유 있는 자의 운동이 환경운동이라는 생각도 그리 기상천외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전부 현실의 오해,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에게 환경운동이란, 나 스스로 인간다움을 움켜쥐어 짐승’(불교의 맥락에서의 짐승이지 권리의 주체로서의 동물이 아니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 같은 것이지, 나 외에 따로 존재하는 귀한 자연을, 잘난 내가 나서서 보호하는 운동이 아니다. 나는 나를 지키고자, 나의 인격과 삶을 보호하고자 환경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귀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이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재의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가, 그 질서에 편입된 이 나라의 내부 질서가 일종의 식민주의적(제국주의적)’ 실천들을 디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실천은 크게 네 가지 양태를 띤다.

 

자연의 식민지화. 이것은 인류의 삶과 분리 불가능한 자연의 이용 같은 것이 아니다. 이윤의 증식을 위해 특정 생태계의 재생가능성, 재생가능력, 순환력, 순환의 흐름까지 가차 없이 훼손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른바 기후위기는 대기의 식민지화의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의 삶과 이 무자비한 훼손 운동의 관계를 잇는 개념이 바로 Ecological Rucksack/Backpack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어떤 상품/서비스의 생산-유통 과정에서 소비된, 생산사슬에 빨려 들어간 자연물(자연자원)을 지시한다. 이 자연물을 안다는 것은, 해당 상품/서비스의 실체를 안다는 것이다.

 

남반구(1세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통칭)의 식민지화. 이것은 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 둘의 결합물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제1세계의 대형마트이고 백화점이다. 1세계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간 한국에서도 물론 이 둘의 결합물을 훤히 확인할 수 있다.

남반구의 노동과 자연은 하나의 세트가 되어 북쪽의 제1세계로 질질 끌려와 진열된다. 1세계의 소비자가 구매할 때, ()는 남반구의 피땀만이 아니라 그 땅도 게걸스레 먹어 치운다. 우리가 태어나 떠안는 제1의 과제는 (우리 자신을 극복하여)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눈을 떠 현실을 바로 보고, 불평등에 맞서야만 한다. 국가공동체 내 불평등 문제도 중요하지만, 상품에 내재된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 상품 안에 들어와 있는 불평등 문제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미래의 식민지화. 현재 한국의 최대갈등은 세대간 갈등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기후위기가 격화되면서 이 갈등이 한층 격화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현재의 20304050이 되었을 무렵, 새로운 2030은 현재의 2030(미래의 4050)을 탄소 적폐 세대로 규탄할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선구자로서 우뚝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오직 미래세대의 인간만 피식민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시간을 점유하게 될 지구의 모든 존재자들이 오늘의 피해자, 희생양들이다.

 

국가 내부의 식민지화.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는 특정 집단이 식민지 주민처럼 취급된다. 비단 외국인노동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아파트에 못 들어가는 택배 노동자는, 전반적 경향성의 한 가닥일 뿐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이 건설되고 있는 마을인 경주 월성 나아리 주민, 신공항이 건설되면 쫓겨나야 하는 가덕도의 400여 주민, 농지를 포기하고 태양광 패널 임대 사업에 나서라는 종용을 받는 농민들, 그리고 민간인인데도 마치 군인처럼 불침번을 서면서 쪽잠을 자야만 하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하늘 아래 모두가 존엄한 존재이거늘, 왜 이들은 2류 인간, 2등 국민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할까?

이 네 가지 유형의 식민지화(식민주의적-제국주의적 실천)가 내 삶에 들러붙지 못하게 하는 것. 내 업을 지혜롭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악업을 줄이고, 선업을 늘리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각자의 환경운동이다.

물론 나도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네 가지 유형의 실천과 연을 끊는다는 것은 곧 그 전의 삶의 방식과, 그 전에 누리던 달콤함과 그것에 관한 추억까지도 연을 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신세계에 들어가 보면 신세계만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법이다. 요컨대, 내게 환경운동은 새로운 맛의 탐닉이다.

나 하나 바꾼다고 뭐가 바뀔까, 라는 생각은 사악한 생각이거나/이면서 우매한 생각이다. 나 하나도 못 바꾸는데,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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