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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낱말의 우주

獨 – 오직 고독 속에서

by 유동나무 2011. 4. 12.

  

(Du/) Solitary, Solitaire, Einsam, Solitario, Solitario, 홀로  

+ . ‘외로움을 나타내는 말인 고의 합성자. 은 아이를, 는 오이를 뜻한다. 일설에 의하면, 는 발음기호로 쓰인 것이고, 뜻은 에서 취한 것이다. 그렇담, ‘부모 없는 아이, 홀로 된 아이를 고라 한 것이겠다. 이러한 뜻이 와전되어 외롭다, 외따로, 저버리다, 떨어지다는 뜻을 지시하게 되었다.

 

 

홀로 사는 나이 든 이를 우리 한국어는 홀앗이라 부른다. 한자어로는 고로孤老라는 말이 이에 가깝다. 고아孤兒, 고로孤老, 우리의 맘에 측은히 여겨지는 이들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이는 본디 사람이 무리 지어 모듬살이 하도록 만들어진 동물이기 때문이리라.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 묻는 이에겐, ‘거울을 보라는 답이 웃길의 답이겠다. 거울 속 얼굴에는 귀 두 쪽, 입 하나가 있을 터이매 그러하다. 우리에겐 우리의 말을 들어 줄 이가, 우리의 귀에 들려 올 말이 필요한 것이다. 즉 사람이라는 존재의 뿌리에 있는 근본적 사회성, (무리를 이루어 있으면 좋은 성질), 대화성을 우리의 얼굴만큼 잘 말하여 주는 것은 없다. 따라서 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것이요, 한 이가 주위에 있거든, 그 고가 병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낱말 은 바로 이 고의 친우다. 그런데 이 친구는 에 비해 자못 복잡한 외양을 하고 있다. 무슨 뜻이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이것 역시 처럼 형성 문자로, 에서 음을 취하고, 에서 뜻을 취한 낱말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에 의하면, 은 수컷 동물의 성기를 상형화한 것으로, 본디 수컷 개와 같은 수컷 짐승이 홀로 있는 상태를 나타낸 낱말이었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홀로 있는 남자를 가리키게 되었다.[1]  

 

 

은 그렇담 본디 암컷[여성] 짝을 찾지 못한 불쌍한 수컷[남성]’이란 뜻이었을까? 그러나 문명이 발달되면서, 이 낱말 은 고에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쓸쓸하고, 외로운 모양, 보기에 참으로 딱한 모양이라는 강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어느 정도 벗어버린 듯하다. 그러한 뉘앙스보다는 무리와 단절되어 홀로 있다는 뜻이 이 오늘날 이 낱말의 실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독거獨居는 외로운 삶이 아니라 홀로 삶이요, 독락獨樂은 외로이 즐김이 아니라 홀로 즐김인 것이다. 독음獨吟은 외로이 읊음이 아니라 홀로 읊음이요, 독행獨行은 외로이 실천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혹은 홀로 정진함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와는 달리 은 오히려 피하여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배워야 할 것, 가까이 해야 할 무엇이다. 사람은 무리 속에서 살아야 마땅하지만, 오로지 무리 속에서만 있는, 있으려는 인생은 명상과 성찰과 사색이 없는 인생, 명상과 성찰과 사색을 포기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명상과 성찰과 사색은 오로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의 상태에 있을 때야만 오올히 체험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 기도의 근본 조건이기도 하다. 을 모르는 인생은 기도를 모르는 인생이다. 기도는 오로지 기도하는 이가 기도를 통해 만나려 하는 얼님 앞에 독대獨對할 때에만, 독대하는 조용한 시간Quiet Time’에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은 침묵, 침잠, 침정의 조건이요, 침묵과 침잠과 침정이 깊어질 때에야 비로소 기도는 가능해진다. 기도는 그 침묵, 침잠, 침정의 조용한 결과물이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중얼거림이 아니다. 그러나 토마스 머튼Thoms Merton이 강조하듯, 이때의 은 그저 주관적인 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객관적이며 구체적이며 이 세계보다 더 위대한 어떤 존재와의 하나의 교감이어야만 한다. [2] 이러한 의 임자는 홀로 갇혀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거꾸로 이 세계보다 더 큰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이 세계로 완연히 열려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는 사물의 날 존재와 대면한 채[3]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한 시간에 나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려 홀로 있음의 외로움으로부터 활연豁然히 해방되고, 삶 자체의 요구로부터 완연히 해방된다. 그리하여 이 몸 전체가, 이 생명 전체가, 이 삶 전체가 그 순간 기도가 됨을 발견한다. [4]  고독 속에서 몸과 삶이 기도가 되었다는 것을, 유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한 순간에도 도를 떠나지 않아, 신독愼獨이 되었다는 것이다. [道也者不可須臾離也. .君子 愼其獨也]   

 

 

참된 무엇인가를, 진리를 찾으려는 이도 다른 무엇보다 의 상태를 먼저 찾는다. 그 모두가 사회적 명예와 물질적 부를 보장하는 길을 갈 때, 무엇이 참된 사람의 삶인지를, 무엇이 존재함의 진리인지를 묻는 청년은, 예상되고 기대되는 궤도를 홀연 벗어나 고독한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은 오늘날의 투어tour가 아니다. 그것은 정신의 여행journey이다. 영화 [모토 사이클 다이어리]의 청년(체 게바라)이 그러하며, [인투 더 와일드]의 청년(헨리 데이빗 소로를 연상시키는 청년)이 그러하다. 앞의 청년(체 게바라)은 고독한 정신의 여행 속에서 사람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의 해방된 삶이라는 삶의 이유, 존재함의 이유가 빛나고 있는 새 세계의 출구로 나온다. 한편 뒤의 청년(소로와 비슷한 청년)은 많은 사람들을 지나고 지나 의 처소로 자꾸자꾸 올라만 간다’. 그리하여 아무도 없는 곳, 자연만이 있는 곳에서 삶을 실험한다. 문명을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가 문명이 되어보려는 것이요, 문명된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의 육체를 통하여 깨달아 보려는 탓이다.

 

 

상처 입은 이, 길을 잃은 이, 그리하여 치유와 길을 찾는 이, 그 방편으로서 예술을 찾는 이 역시 을 먼저 찾는다. 의 조건이 그이에게 치유를, 길을, 작품을 열어줄 것임을 적어도 어렴풋이는 알기에 그러하다. 전도 유망한 젊은 가수인 한 청년은 어느 날 의사로부터 귀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음악인이라면 문제라고 의사는 말한다. 음감의 상실은 곧 가수로서의 삶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므로, 청년은 깊이 절망한다. 차츰 변색되어 가는 현실로부터의 깊은 상처를 감당하지 못한 채, 그가 찾는 곳은 사람 없는 곳, 훗가이도의 설해雪海. 그가 머무는 민박 식 호텔의 주인인 젊은 여인은 밖이 추워 (차 안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은 사람이라고는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황막한 제방에 가 홀로 선 채 설해를 바라본다. 설풍雪風 속의 독자獨者. 그 여인(=우리들)이 보기에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그 청년이 그 자리에 서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나중에 밝혀진다. 그는 홀로 음악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홀로, 스스로의 치유 속에서, 길을 찾으며, 음악을 창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영화 [오이시맨]의 이야기다.)       

 

 

외따로 저기, 나무 그늘 아래, 강변 가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다른 이는 모두 다 한 곳에 모여 산해진미山海珍味 감상에 넋이 빠져 있건만, 그 사람만은 홀로 강변을 유유자적 거닐고 있다. 여보우, 이리와 이것 좀 맛 보우. 지글지글 복작거리는 소리의 한 가운데에서 누군가 이렇게 그이에게 소리쳐 보아도, 그 사람은 아예 들은 체도 아니 한다. 그이는 그이의 이 주고 있는 어떤 맛을, 자신을 부르고 있는 이가 말하는 맛과 바꿀 마음이 전연 없기 때문이다. 그이는 됨 가운데, 그들이 말하는 맛과는 전연 다른 맛, 정신의 맛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보다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맛 세계에 흠씬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신의 삶, 명상의 삶, 기도의 삶, 치유의 삶, 예술의 삶이 생명하는, 그리하여 정신의 작품이, 마음의 기쁨이, 얼의 신명이 꽃피어나는 의 대지를 그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의향이 없기 때문이다. 불꽃의 피어남에 기름이 필수이듯, 정신의 꽃핌에 은 필수임을 그이는 체험으로 몸속 깊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낱말의 우주>, 궁리, 2011, 564-569면) 

 

 



[1] 시라가와 시즈카 (윤철규 옮김), 한자의 기원, 2009, 277

[2] Thomas Merton, Thoughts in Solitude, 1999, p. 81

[3] Thomas Merton, 같은 책, p. 82

[4] Thomas Merton, 같은 책, p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