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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껴 우는 기러기 해가 뜨니 비로소 아침이네

by 유동나무 2010. 1. 25.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청와장靑瓦匠 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청와장”이란 말에 놀란 것이 언제던가. 마음 구석에 남았는 “청와장”을 버리고 글 보시를 하며 살까. 글 보시를 하며 살까. 그러나 어늬 글을 어늬에게? 이왕지사 붓을 들었으면, 사람 살리는 글을 써야 하리. 풀을 살리는 글을 써야 하리. 그러나 글이란 괴론 맘, 불평不平한 맘을 담아내는 한적한 방의 노래이기도 하느니. 

  
“흐느껴 우는 기러기 해가 뜨니 비로소 아침이네”라고 했으니, 이즈음의 삶은 꼭 이렇게 요술스럽다고나 할까. 마법스럽다고나 할까. 새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녘에 일어나 글월을 짓거나 가만 적경寂境에 들어보는 날은 계획보단 적어서, 동중서의 세 가지 여가(겨울, 밤, 흐리고 비오는 때)를 즐기지 못하는 불행의 나날이랄까. 깬 새들이 째쨋대는 새벽 다 지난 무렵에 깨어 피로와 혼몽이 겹쳤던 어제의 잡무와 비로소 이별하는 나날이랄까. “결포에 배 띄워 글과 술을 한껏 즐기니 풍채가 훤해지다”라 했으니, 이런 별유건곤別有乾坤을 맘속에서만 그리어보는 나날이랄까. 이런 한사閑事를 마음 한쪽을 비워 망연히 생의해보고는 마는 날들이랄까.

  
한적한 주말이 또 이 누옥을 왕림해주셔서, 놓여 있는 몇 갈래 앞 꽃길을 바라보며 남몰래 웃음짓다. 동중서의 낙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흐린 주말이어서, NSW 주립미술관 방문 계획을 신이 나서 버리고, 술과 차를 느런히 凊寂과 곁에 두고 즐겨볼까.


2007.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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