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 넘게 이어진 극단적인 폭염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1948년 하반기,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군인들의 폭력을 피해 동굴에 숨어 있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한국인은 최근 일주일 넘게 냉방 동굴에 숨어 지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러나 냉방 동굴에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들도 있었다. 농부, 건설 노동자, 운수 노동자, 택배 노동자 등 각종 야외 작업자들이 그들이다. 괜찮을 줄 알고 걷거나 야외 놀이 활동을 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온열 질환자나 사망자 가운데 일부는 피해자 당사자에게 피해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책임이 거의 없는, <순수한 의미의 피해자>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순수한 의미의 피해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피해는 있되, 책임지는 이는 없는 사회에,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이 “국가적인 기후 재난”임을 대통령조차 인정하지만(겨우 8월 6일에서야!), 정작 대통령은 그 재난의 <책임을 묻는> 정치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조차 이러니, 사실상 아무도 폭염의 원인을, 폭염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순수의 의미의 피해자>는 몇 명이나 될까? 만일 제로라면, 위에서 내가 한 이야기는 별반 무의미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관련해서 우리는 유럽에서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평상시라면 없었을 사망자) 수가 뉴스로 계속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는 이런 개념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정부는 <초과 사망자> 수를 계산해서 통계에 잡고 있다. 문제는 이 계산에 너무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유럽은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지만, 한국은 수년이 걸리고 있다.
2018년 한국에서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 수가 뒤늦게 집계되었다. 그 숫자는 804명(질병관리청 집계)이었다. 하지만 2018년 당시 정부가 집계한 폭염 사망자 수는 겨우 48명이었다. 당해년도 사망자 수 집계가 사실상 엉터리임을 이 숫자들이 바로 말해준다. (약 18배의 집계 차이가 나는 셈이다.)
2026년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는 몇 명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현재 집계된, 2026년 폭염 유발 추정 사망자는 23명인데, 이를 18배하면 414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수만 명이 죽어야 재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순수한 의미의 피해자>에 축산 동물, 양식장 동물도 포함되어야 한다. 2026년 현재까지 폭염으로 인해 (현재까지) 830,000 개체가 넘는 축산 동물이, 540,000 개체 이상의 어류가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을 합치면 137만 개체 이상이라는 숫자가 튀어나온다.
기가 막히는 사실은, 이런 집계가 축산업자나 양식업자들이 재해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보험회사에 청구한 내역을 통해서 도출된다는 것이다. 축산업자나 양식업자들은 이런 보험금을 타기 위해 매달 보험금을 지불했을 것이다. 왜 이들은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폭염에 대해서 돈을 내야 한단 말인가.
가뭄이나 홍수의 피해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기후 재난의 피해자는 정부에 피해보상금을 청구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이들에 대해 피해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이걸 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어디에서 (기후 재난)피해보상금 재원을 마련해야 할까? 날씨 제조자들weather makers, 폭염 제조자들heat wave makers이 별도로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폭염의 살인적 폭력은 날씨 제조자들, 폭염 제조자들이라는, 추적 가능한 특정 인간집단들에 의해 유발된 것이기에, 바로 이들에게 피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데 문제는, 문제 유발자들이 전 세계 곳곳에 있다는 점, 문제 유발 행위가 과거로부터 누적되었다는 점이다. 유발의 스케일은 글로벌/히스토리컬한데, 피해의 소재지는 로컬/현재라는 것. 그러나 이런 난국이 국가별로 시행되는 탄소세 도입의 명분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도 서둘러 탄소세를 도입해서 (현재 34개국에서 탄소세를 시행 중이다) 한국이 야만적인 국가가 아님을 세계에 증명해야 한다. (202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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