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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물과 지구를 위한 미술관

사랑이란 ‘지옥에서 구해주는 것’-리차드 앤스델, 어니스트 시튼, 칼 허쉬베크

by 유동나무 2021. 3. 30.

1.

현재 지구상에는 300종이 넘는 견종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국제애견협회(Fédération Cynologique Internationale)가 집계한 공식 품종 수는 약 340종이니, 300이라는 숫자로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300종이 넘는 견종 가운데 콜리(collie)는 본시 양치기용으로 키웠던 견종이다. 스코틀랜드가 이들의 고향인데, 그래서인지 영국인들 그리고 신세계(New World)’로 넘어갔던 영국인들과 그 후손들로부터 애정을 두툼히 받아온 품종이다. , 콜리는 앵글로-아메리칸 세계의 개라 할 만하다.

영국 화가 리차드 앤스델(Richard Ansdell, 1815~1885)의 그림에는 개가 자주 등장하는데, 콜리도 그가 즐겨 그린 개들에 속한다. 우리는 콜리와 함께 삶을 꾸려갔던 사람들의 옛 풍속을 앤스델의 그림으로 엿볼 수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콜리, 염소, (Collies, Ewe and Lambs)> 같은 작품을 보면, 과연 이 개가 양치기 용도로 사람들이 기르고 돌보던 개였음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사람(목동, 양치기)을 대신해서 염소와 양을 지키고 관리하는 관리자 동물을 보게 된다. 한편 앤스델의 다른 작품 <새 잡는 개, 토끼 사냥, 풍경(Bird Dogs, Hunting Rabbit, Landscape)>(1869) 이 녀석들이 양치기라는 본업을 넘어 주인이 벌인 여러 사업에 적극 참여했던 일꾼들임을 짐작케 해준다. 왜 아니겠는가, 콜리는 영준(英俊)하기로 유명한 녀석들이다.

 

 

 

2.

콜리가 얼마나 스마트한 개인지 말해주는 실화 한 편을 소개할까 한다. 어니스트 시튼이 쓴 <내 괴짜 친구, 빙고>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시튼은 우연히 콜리라는 종의 우수함을 알고는, 그만 소유욕에 사로잡히고 만다. 종내 그 욕망을 실현하게 되는데, 콜리의 혈통을 가진 어린 강아지 하나를 우연히 얻게 된 것이다. 시튼은 그 강아지에게 빙고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빙고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된다. 이 무렵 빙고의 이야기에는 먹구름처럼 어두운 색조가 깔리기 시작한다. 그건, 사춘기를 지나며 빙고가 늑대 본연의 야성을 드러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빙고는 영리해서 자신의 야성을 쉽사리 인간에게 들키지 않는다. 오직 밤에만 야성을 발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녀석은 캄캄한 어둠이 찾아들면 들판을 쏘다니며 죽은 말고기를 먹거나 코요테, 늑대들을 혼내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느 늑대에게 호되게 당해서는 돌아오곤 했다. 밤만 되면 하이드로 변신했던 지킬 박사처럼, 빙고도 밤만 되면 인간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야성의 동물로 변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어서, 빙고는 맘에 차는 암컷 코요테를 거느릴 정도로 다부지고 호탕한 기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진짜 이야기는 어느 해 겨울, 시튼이 돈 욕심을 부리며 시작된다. 그해 겨울, 시튼은 털가죽을 팔아 지갑을 불릴 요량으로 늑대와 여우를 많이 잡아들인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지나치게 욕심을 내던 그에게 불운은 악령처럼 다가온다. 어느 날, 코요테 한 마리를 잡고서는 덫을 추가로 설치하던 중, 어리석게도 그는 자기가 이미 설치해둔 덫의 위치를 헷갈려서는 이미 놓았던 덫에 손을 물리고 만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격이랄까. 설상가상, 덫에서 헤어나려고 애를 쓰다가 왼쪽 다리마저 덫에 물리고 만다. 문제는 그 덫들이 말뚝에 단단히 매여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시튼은 덫에 물린 그대로 이동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저주 어린 늪의 입속에 들어가고 말았음을 그가 알아차리고 그 사실을 수용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다. 누가 근처에 있는 스패너를 가져다주기만 한다면……그러나 이곳까지 사냥하러 나섰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이곳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도 않는 곳이지 않던가…….

겨울밤이, 한파가,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몸에 악귀처럼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코요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우선 코요테의 사체를 끌어와 뜯어먹고는 시튼의 동향을 살폈다. 한 녀석이 사냥총 냄새를 맡더니 서둘러 흙으로 덮었다. 그러고는 시튼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처지임을 이내 간파하고는, 그의 얼굴을 향해 제 포악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신호탄이라는 듯, 다른 녀석들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이것은 1886년 겨울에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시튼이 사망한 해는 1946년이었다. 대체 그는 어떻게 살아났던 걸까?

코요테 무리가 말뚝과 덫에 묶여 있던 시튼에게 다가오던 바로 그 찰나, 크고 검은 늑대 한 마리가 숲속에서 홀연 나타나 코요테 일당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건 늑대가 아니라 다름 아닌 빙고였다. 모두가 왜 시튼이 돌아오지 않는지 궁금해하고만 있을 때, 그를 찾아 나서는 행동을 실행한 이가 있었으니, 빙고였던 것이다. 악당들을 처치한 빙고는 시튼의 말을 알아듣고는 스패너를 그에게 가져다준다.

그처럼 영특한 빙고이건만, 말고기 맛에는 눈이 뒤집혔던 모양이다. 어느 날, 독이 묻은 말고기를 먹다가 죽을 처지에 이르자, 신음하며 빙고가 찾아간 곳은 녀석이 어릴 적 자라던 시튼의 오두막 집, 그 집의 문 앞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시튼을 구했던 빙고는, 자기에게 찾아온 죽음의 문턱에서는 시튼을 부르다 죽어갔던 것이다…….

 

3.

이 감동적인 짧은 이야기는 콜리의 특별한 지능에 관한 보고서는 아니다. 개와 인간이 나눌 수 있는 깊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만도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사랑의 본질에 관한 담론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화가 칼 허쉬베크(Carl Hirschberg, 1854~1923)<빅 브라더(Big Brother)>가 보여주는 것처럼, 행복을, 행복감으로 충일한 시간을 공유하는 행동이다. 어깨에 업힌 꼬마 동자에게 큰 형은 누구겠는가

 

 

그러나 그 이전에 사랑은, 빙고가 시튼에게 그러했듯, 사랑의 상대를 지옥에서 구해주는 행동일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리차드 앤스델의 <양치기의 죽음(The Lost Shepherd)>(1860)에서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지옥에서 구해주기 위해 분투하는 행동이다. 물론 행복을 공유하는 행동과 지옥에서 구해주려는 행동이 둘로 갈라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후자가 되지 않는다면 전자는 영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언제나 후자가 먼저다.

 

 

이를테면, 케어(CARE) 박소연 씨 사태로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져 나왔지만, 그중 최상위의 문제는 단연 개농장이라는 지옥의 문제임을 직시하자. 입에 전기봉을 물고 죽어가는 지옥.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인간의 친구를 살리지 못하는 지옥. 그렇게 죽은 개를, 그 개의 고통을 먹어 치우는 지옥. 이런 미친 짓을 막지 못하는 지옥. 이 모든 지옥에서 우리 자신을 구해야만 한다. 분투만이 사랑을 입증하는 상황 속에 우리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