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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스티브 잡스를 애도하냐? 난 구럼비를 애도한다.

by 유동나무 2011. 10. 7.


최근 세계[라기보다는 산업화된 세계 일부]를 뒤흔든 바 있는, 애플 사의 전 CEO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디자인은 제품, 서비스 연속적인 외층에 표현되는 인간 창조물의 영혼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와 애플 사가 강조한 것은 인간 창조성, 혁신성, 디자인과 같은 가치다. 그러니까 그간 사람들을 열광시킨 것은 모두 문화와 창조성, 창조적 삶에 관련되는 가치인 것이다. 그래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도 하고, 창조성의 세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애재라, 21세기는 그와 동시에, 그만큼이나 기후 변화의 시대, 문명의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는 애플 사가 제조한 전자 제품들의 부품들 모두의 근원적 출처는 자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전부 자연 생명계로부터 인간이 가져와 (각종 연구소, 실험실에서) 변형한 것들인 것이다. 조금 달리 말하면, 인간의 문화적 창조성은 자연계라는 물리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그것의 부재 속에서, 그것과 적대하며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인간 창조물의 영혼”이라는 디자인에 대한 감각 역시 인간이 자연계와의 교감을 통해 발달시킨 것이지, 다른 식으로 발달시킨 것이 아니다. 색채, 색채의 채도와 명도, 직선과 곡선, 면과 점, 원과 원뿔과 원기둥과 구, 공간적 깊이와 넓이[입체성], 얕음과 깊음, 선형과 비선형, 규칙과 불규칙, 대칭과 비대칭, 단장과 원근, 단순성과 복잡성, 일체의 패턴, 이 모든 디자인의 요소는 이미 생명[물], 자연물 속에 들어 있는 바, 모든 디자인의 근원적 출처는 인간 영혼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 지각 행위, 그 누적의 체험인 것이다. 가령 인간의 체세포 하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때, 그 들여다보는 사람은 마치 마티스와 피카소와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이 모든 천재적 예술혼들이 합작하여 만든 상상적 작품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어찌 디자인 감각의 출처가 생명 지각이 아니라 말할 수 있으랴.


요컨대 인간의 문화적 삶, 창조적 삶 일체는 어떤 생물물리적, 생화학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해온 것이고, 그 토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바로 생명이자, 생명의 존재 그 자체로서의 생명의 우주적 율동인 것이다. 문명과 이 생명물리적 토대간의 교섭 행위 자체의 지속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마땅히 생명의 자리로 내려가, 생명의 문화 선행성, 문화 포섭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 등의 창조혁신론, 디자인론은 오직 이 지속가능성이 의문시되지 않는 시대에만 참으로 가치 있다는 것, 이 지속가능성 의제를, 생명에 대한 관심을 괄호에 넣은, 창조성/문화/디자인 가치의 역설은 반편이의 장애 담론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