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전 산문

행복

by 유동나무 2010. 1. 5.


 


나는 작가나 예술가의 저작권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또 내가 한 말, 내가 하고자 하는 말도 저작권을 내세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 밥벌이를 다른 식으로 해야 한다는 말과는 관계가 없다. 작가나 예술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1) 작가나 예술가는 자신이 일개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남들(타인과 타생명체들)의 덕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2) 작가나 예술가의 작품행위에도 “남들의 덕택”이라는 근본 문법이 스며들어가 있다는 것을 작가나 예술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발끈할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재능이 있다. 남들도 이를 인정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나는 그 사람에게 사태는 그렇지 않다고 정중하게 말해야 하겠다. 모든 이에게는 예술적 재능이 있다. 다만 그것이 발전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즉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면 그 예술적 재능은 꽃을 피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글을 재료로 하는 문학 작가의 경우에는 “남들의 덕택”으로 창작행위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물론 남들이란 “이미 쓴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포함한 “말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이다. 작가가 작가로 세계에 나가 책을 판매할 적에 그는 두 가지 지위에 동시에 서게 된다. 하나는 저자author이며, 다른 하나는 글쓴이writer인데, 저자는 저작권을 소유한 이, 그리하여 법적 소유권을 가지는 이, 인세를 받는 이를 말하는 반면, 글쓴이라는 것은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된 이를 말한다. 전자는 출판사와 계약을 하면서,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얻게 된 지위인 반면, 후자는 그 이전에도, 완전한 무명인 시절에도 가지고 있던 지위인 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허상, 헛것인 반면, 후자는 진짜, 참것라는 게 내 생각이다.



현대 출판 산업에서 이용해먹고 있는 저자-신화는 낭만주의적 예술관에 기원한 것으로, 사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어떤 기이한 천재가 있어 이를 창조해내었도다. 그리고 아줌마 부대는 열광하고, 사인회는 열린다. 저자라고 불리는 양반, 뉴 페이스는 한껏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자기에게 스스로 부여해 인터뷰어들과 미팅을 한다. 물론 이 인터뷰어가 아줌마 부대의 일원이면 더욱 좋다.



이것이 헛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것, 참것은 다음의 것이다. 한 언어 생명체는, 그러니까 교보문고 저자 사인회에 오늘 나갔던 이 사람은, 현대의 세계에서는, 늘 독자-작가 (읽는이-글쓴이), 편집자적인 작가로서 글을 써왔고 써갈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읽기 (지식소통-지식이동) 가 없었다면 그는 쓸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의 독자로서의 정체성은 평생 지속될 정체성이다. 나이폴은 자기가 독자가 아니라 작가라고 말한 바 있지만, 올해[2008년] 퓰리처 상을 받은 작가는 자기는 작가가 아니라 늘 독자라는 말은 한 바 있다. (읽지 않는 자신은 상상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후자의 견해가 좀 더 솔직하고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작가의 생명수인 읽기/독서가 지식소통, 지식이동이라고 내가 말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지식소통, 지식이동 - 이것은 그런데 블로깅을 통해 유저user가 경험하게 되는 중요한 경험 내용은 아닌가? 하니 어떤 작가가 author의 정체성을 벗고, writer의 정체성만 스스로에게 인정하는 정직함에 도달할 때 (밥벌이 수단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통이 일정하게 다듬어질 경우 훌륭한 소통 (사람간의 소통과 지식소통을 동시에 포괄하는 소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때, 그는 blogger로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적에 블로깅은 유쾌한 일이 될 수 있고, 보기에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또 역으로 자기가 author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어떤 이가 blogger가 됨으로써 그렇게 되는 일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될 때 이 사람은 이제 자신의 블로그는 폐쇄해야 하는가? 더 이상 저 유치한 이들의 세계, 천민들의 세계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이제부터는 저 고고하신 천재님들이 거주하시는 높은 곳으로 이동해 살겠다고 천명할 것인가.



내가 말하는 바는 매우 간단명료하다. 그가 author든 아니든, 다 함께, 블로거로서, 내가 남들의 (지식정보) 덕택으로 나 (나의 지식정보) 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존재로서 살자는 것이다. 가벼워지자는 것이다. 겸손해지자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존재의 무게(존재란 곧 무게가 아닌가!)를 벗어버리는 데서 온다고 하더라. 어느 철학자의 책을 보니, (어떤 언어에서는) 행복이라는 말 뜻 자체가 그런 말이라고 하더라.

   
2008. 5. 25

 

'이전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  (0) 2010.01.05
찾아야 하는 존재의 가벼움  (0) 2010.01.05
미인  (0) 2010.01.05
외면일기, 내면일기, 생각일기  (0) 2010.01.04
메를로 뽕띠 저, 류의근 역 [지각의 현상학]  (0) 2010.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