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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산문

가난

by 유동나무 2010. 1. 5.



왜 ‘가난’이란 말을 고집할까. 누차 이야기해온 대로, 이 말을 고집하는 한, (그 앞에 고르게, 공생공락의, 이 아니라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이 말로서 뜻하려는 바가 대중화되거나 보편화될 가능성은 그만큼 적다. 누차 이야기해온 대로, 가난을 추구하는 이는 이 세계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늘늘 풍요이지, 가난이 아니다. 이 말에 물론 이런 답이 올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지금 식으로의 풍요 추구가 파국을 불러오고 있고 필연적으로 파괴를 동반해왔다는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서의 말이 가난이 될 수는 없다. 다른 식의 풍요, 새로운 식의 풍요, 이 시대에 가능한 유일한 형식으로서의 풍요라 말해야 한다.


2008.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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