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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내면일기, 생각일기

by 유동나무 2010. 1. 4.



 

미셀 투르니에의 책 제목 [외면 일기]는 샤를 보들레르의 [내면 일기]에서 온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란 책 제목으로부터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책 제목이 나온 것과 비슷하다. 청소년기는 아이와 청년의 중간기인데, 돌이켜보면, 나의 경우에도 별반 다를 바 없이, 청소년기 때부터 일기다운 일기를 적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청소년이었을 시절엔 인터넷이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였겠지만, 나는 노트에다 펜으로 적었는데, 그 이후로 난 그 시절 일기를 모조로 다 태워버렸다. 이걸 태운 시점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한 시점인데, 이걸 아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청소년기엔 왜 일기를 쓸 수밖에 없나. 청소년기에 들리기 시작하는 음악은 대개 록앤롤인데, 왜 그러할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어린 시절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어린 시절이 인간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청소년기에 쓰는 일기는 대개 “내면 일기”인데, 말 그대로 남에게 하지 못한 속말을 해보자는 것, 그것이 이른바 내면 일기라는 것의 실체다. 청소년은 어떤 순수가 어떤 나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나를 압도하는 그 무엇에 의해, 나의 생존과도 결부되어 있는 그 무엇에 의해, 훼손당한다는 느낌을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 “살아보겠다고” 내면 일기를 쓴다.

 


하지만 이 습성은 어떤 이들에겐 청년기에까지 이어져, 그들은 청년이 된 후에도 남몰래 내면일기를 쓴다. 청년들이여, 그러나, 말이다, 당신의 속마음을 당신이 아무리 잘 적어본들, 그 뉘가 당신의 속마음을, 그 속마음에 대한 당신의 그 빼어난 기록을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으로 보랴. 당신의 고뇌와 슬픔은 잘하면 詩가 되겠으나, 당신의 고뇌와 슬픔이 녹아든 그 詩가 이 세계[의 재생산 혹은 진보]에 도대체 무슨 보탬이 되랴. 또 당신 존재의 해방에 얼마만큼이나 도움이 되랴. 詩란 말의 끄달림을 벗어보자는 마음에서 나왔겠지만, 그 시가 얼마나 그대를 말로부터, 말의 세계에 붙들려 있는 존재의 속박됨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수 있으랴.  

 


하여 내가 지금 미셀 투르니에처럼 차라리 “외면 일기”를 적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외면과 내면은 그렇게 간단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외면에 대해서 적지만 내면을 표현할 수도 있고, 내면에서 일어난 것을 적은 것이 외면에 대한 적실한 기술일 수도 있다.

 


내가 “아직도” 내면 일기를 적고 계신 “청소년 형 문인들”에게 일기 쓰기와 관련하여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은, 웬만하면 “쓰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 자명하므로, 이 말 대신, 기왕지사 일기를 쓰고 싶으면, 내면/외면이 아니라 “생각 일기”를 적어보라는 말을 해야겠다. 청년들이여, 내면 일기를 찢어버리고, 생각 일기를 적어라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을 아껴, 푸른 색 표지가 아름다운 노트에 만년필로 적어라. 그리고 그 일기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마라. 글쓰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2008.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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