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까지는 여자와 돈의 유혹에 대한 조심을 처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방심이 藥이 되고 있다. 되도록 미인을 경원하지 않으려고 하고, 될 수만 있으면 돈도 벌어보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김수영이 1968년 (그의 나이 47세) 에 쓴 짤막한 산문인 [美人]의 앞머리다. 그런데 신중현이 [美人]이라는 곡을 썼을 적에도, 美人에 대한 이러한 태도 전환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한 전환을 자기 풍자적인 느낌을 가지고 선언한 것이 [美人]이라는 곡은 아닐까 나는 생각해본다. 이 곡의 가사는 물론 매우 단순하게도 “모두 사랑하는 美人을 나도 사랑한다, 나도 몰래 바라보게 되고, 자꾸만 보고 또 보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사와 겹쳐지는 멜로디 이후의 멜로디, 즉 가사 없는 멜로디 부분을 잘 들어보면, 어떤 풍자 같은 것, 커밍아웃 한 자의 해방의 웃음 같은 것, 김수영이 말한 방심의 藥 같은 것이 스며 있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신중현이 그러한 “방심을 통한 초월” 혹은 “초월한 이의 방심”의 세계에 도달해 이러한 노래를 썼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거야 사실 아무래도 우리에겐 상관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혹하며,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즐거워하는 美人,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는 美人,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으나 肉眼이 즐거워하는 그러한 美人을 나도 사랑한다. 그래 나도 사람의 一點이요, 남자의 一點이요, 세계의 一點이요, 평범의 一點이다. 이렇게 크게 한번 웃어보는 것, 그러한 범박을 크게 한번 풍자적으로 들여다보고 웃어보는 일 - 나는 어쩐지 신중현의 [美人]에 숨어 있는 제안을 그렇게 내 식으로 해석해보고 싶다. “그래 그것은 소위 말하는 美인 것이지, 그렇지, 그렇지, 그렇고 말고”의 美 긍정을 통한 美 초월의 이 몸짓 - 이것은 도력이 높은 승려에게는 즐거움일 터이나 그렇지 못한 이에겐 알 수 없는 것, 그리하여 더러운 것일 터이다.
20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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