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문학이란 기품이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사실 내가 좋아라 하는 것은, 좋아라 해왔던 것은 기품이지 문학이 아니다. 대개 인간은 기품 있는 존재로서 항상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문학에서는 그러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결정되어 드러나니, 그러한 연고로 내가 문학을 좋아라 했던 것임을, 나는 뒤늦게야 (아마도 서른 즈음에) 알게 되었다.
그 즈음부터는 문학은 하나의 결정체로서만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 중요한 것은 예술작품의 결실이 아니라 예술적 생활과 예술적 존재의 지속이라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다. 문학은 존재를 키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경험이 존재를 키우며, 존재가 커질 때에만 문학은 결실체로 드러난다. 문학을 읽든 쓰든,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이 점을 알아야 하리. 인간의 성장, 결국 인간이 숨을 쉬며 살아가는 레종 데떼르는 이것 하나밖에는 없고, 문학을 읽고 쓰는 근본 이유도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버려둠, 내버려둠 - 이것도 존재의 기품 공부에 중요한 과목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그저 내버려두고, 버려두고, 놓아둘 필요가 있다. 무엇을? 관계를, 말을, 소통을, 의지를, 하겠다는 뜻을, 유위의 마음을. 대상과 목표점을 향한 <지향성>이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이라면, 이 근본 조건에 대한 반역적 저항으로서, 탈-인간, 탈자적 존재 되기로서의 쉬고 쉼. 쉰다는 마음 없이 그저 내버려두고 내버려둠을 그저 묵묵 들여다봄, 그저 내버려둠을 홀홀 놂. 이런 들여다봄, 놂이 거름이 되어, 크고 크리라. 너도 크고 나도 크리라. 큰 사람에겐 다 크게 보이느니.
2008.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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