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던 비 그치고, 잠시 지난 일기를 읽다가, 다시 ‘만’에 대해 생각해보다. 나 잘났다, 너희는 못났다, 하는 생각이 바로 만이다. 혹은 나 못났다, 그래 나는 못난 이다, 하는 생각도 만이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혹은 예술을 한다는 이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의 장애물 중 하나는 바로 ‘만’이다.
‘만’이 없는 세계에 살자. ‘만’ 없는 세계에 살면, 그 세계에 사는 이의 글과 작품에도 ‘만’의 그림자는 절로 사라지리라. 다시 말하여, 어떤 특정한 (아마도, 예술적인) 삶을 사는 것, 그 삶에 거주하는 것, 그 삶에의 거주민 자격을 얻는 것 – 이것이 그 모든 철학적, 과학적, 예술적 창작에 우선되어야 한다. 즉, 입니입수하여, 니와 수에, 입니입수한 자의 존재가 일체된다면, 그 자의 ‘만’은 서식할 곳이, 그리하여 제 존재를 드러낼 자리가 없으리라.
이것은 곧 학자, 글쟁이, 예술가가 자아를 버리고, 하나의 매체가 되어, 더 나은 세계의 창조에 기여하되, 자신의 이름을 만드는 (Making A Name)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공동체주의의 한 이상적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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