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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앞의 한국인

by 유동나무 2009. 11. 6.


어제,  트위팅으로 한국인 모두를 향해 한 말.

"1907년 6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러 갔다가 참석도 못한 초라한 조선인. 2009년 12월 코펜하겐 유엔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지만 할 말은 없는 초라한 한국인. 차이가 있나요?"

이 질문에 대답한, 트윗 유저-한국인 수는 제로.

물론, 이는 대답보다는 질문, 생각을 촉구하는 질문이었다. 또한 한국인 그 다종다양한 모두를 한 봉다리에 다 싸잡아 묶어 넣듯 하나의 개념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그렇기는 하나, 저 질문이 무의미할 수는 없다.  그저 무지한 정부, 녹색성장 운운하며 강이나 후벼파는 무개념 정부를 만났다 생각하며, 정부와 거리를 두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팔짱 끼고 손가락질 하기에는, 온난화 문제는 너무나 우리에게 가까운, 실존적인 문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물을 수도 있겠다. 호텔 방에서 분통이 터져 죽은 이준의 비분강개를 품은 녹색 투사는 한국에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