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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go Sum

by 유동나무 2009. 12. 29.


새벽에 선생의 일기에 눈이 갔다. 몇 페이지를 후루룩 넘기다가 선생이 돌아가신 모친의 묘소에 갔다 왔다는 일기에 눈이 머물렀다. 잘못된 머묾이었을까. 몇 줄 읽는 동안 그만 뜨거운 것이 후끈 솟나면서 눈으로 흘러나오고 말았다. 내리사랑은 짐승도 다 하는 것이지만, 올리사랑은 성숙한 사람, 철든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연후 이 글을 읽어서였을까. 실로 오랜만에 축축한 어떤 것이 몸에서 솟아남을 느끼면서 나는 내가 사람으로 살아 있음을 문득, 어떤 해방감과 함께,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말의 기계, 사물과 말에 대한 뉴론들의 반응적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신비를 지닌, 가느다란 숨을 지닌, 생명체로구나……. 이러한 자각은 어떤 소쾌한, 그리하여 다시 소생한 듯한 기분, 새로운 빛으로 찰찰 몸 씻어 말끔 정화된 듯한 기분을 주었다. 나는 결국 인간이라고 하는 것들, 것들의 덩어리-연속체의 한 조각, 한 가지일 뿐이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내 사지와 내 얼굴, 내 음성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내 눈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어떤 것이, 이를 증명한다. 또 나는 공기와 물을 나와 공유하는 다른 주위의 생명체들, 생명체들이라고 불리는 것들, 것들의 덩어리-연속체의 한 부분, 한 귀퉁이일 뿐이다……. 내 눈으로 솟아 올라온 그 뜨거운 것은, 고통을 느끼는 다른 나무들, 벌레들, 베란다에 와서 사과를 달라고 나를 쪼듯 뚫어보는 저 배고픈 까마귀의 몸속에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체의, 공동세계의 한 부분으로, 전체 없이는, 공동세계 없이는, 無다. 나는 하늘 아래 홀로 자유롭지만, 이 자유는, 내가 대화적 말의 우주에 귀속되어 있는 한, 결국 어떤 공공성의 결과이며, 내가 이 공공성에 참여함으로써 얻은 빵이다. 내게 배움의 혜택을 준 것은 이것의 결과를 남의 자유를 위해 쓰라는 어떤 숨어 있는 명령인지 모른다. 내게 장자의 無用之用의 시간을 허여한 것은, 고통 속에서 창조를 이루어내라고 창조적 지성의 유폐를 허용한 것은, 그것으로 세계의 열림에, 가능성의 풍요에 기여하라는, 그 회갑연 날 그 마당에 모였던 민초들의 세계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이룩해내는 공동 창조의 세계로, 미정형의 대화의 세계로 복귀하라는, 숨어 있는 어떤 명령인지 모른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어딘가로 나아가 누구에게 말을 하지 않는 한, 나는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 네가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의 말과 생각은 있다. (나와 너의) 말의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 그러나 이 “말함” 이란, 내가 어딘가에로 나아가 너에게 말함이란 쉬운 것이 아니어서 어떤 고독을, 범속한 경제교환으로서의 말함을 초월한, 사회적 랑그체계 내에서의 랑그를 해탈한 어떤 차원의 고독을 요구한다. 

 

  

2007.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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