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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란다와 까마귀

by 유동나무 2009. 12. 23.


자카란다는 연보랏빛으로 완연히 피어났고, 그 배경을 오늘은 이 마음처럼 착 가라앉은 칙칙한 하늘이 만들어주고 있다. 자카란다에 얹혀져 있어온 예의 까마귀 둥지에는 이제 새끼가 어느 정도 형상을 갖추고 누워 있고, 오늘도 어미는 새끼를 품에 품고 있다. 며칠 전에는 수컷과 암컷이 함께 둥지에 있는 풍경을 목격했다. 저 둥지는 그러니까 어린 생명을 위한 것이지만, 운영은 둘이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암컷은 새끼를 품고 있고, 수컷은 바지런히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저 꼬락서니. 저 꼬락서니를 理想으로 생각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 운운하며 저 꼬락서니에 경의를 느끼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性愛에, 내리사랑에, 밥벌이에 무슨 신성함이 있으랴.

 

그러나 저 꼬락서니에 인간과 문명의 구차스럽고 번쇄하기 이를 데 없는 “낭비”가, 하루 밤저녁에 뉘나 느낄 피로의 기원인 “낭비”가 없는 것만은 사실이다. “저 새들조차 내일을 걱정하지 않거늘, 너희들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아라”는 오래된 가르침만은 저 꼬락서니에서 들려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저들을 보고 또 본다.

2007.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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