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키노쿠니아 아래 Japan City 에서 구입해온 녹차를 마시고 있다. 그간 마셔온 중국차들도 다 떨어지고 한국산 녹차도 바닥이 나고, 일본 말차, 페퍼민트 티, 저 유기농식품 판매점인 매크로에서 산 얼그레이 그리고 이 일본 반차가 이즈음의 양식의 전부이니, 가난도 이만 저만한 가난이 아니다.
그러나 어제는 바쁘다는 이유로, 오늘은 글쓴다는 이유로, 1인용 다구에 마시니 차를 제대로 음미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차는 가루가 물에 섞여 있어 한국 녹차에 비해 맑은 느낌은 적다. 그러나 몸만큼은 어제보다 훨씬 가볍고 맑아졌다. 어제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어떤 울증의 기운이 몸 한구석을 떠돌았으나, 하룻밤의 잠, 하룻밤의 깊은 죽음은 다시 신천지를 열어놓았다. 선생의 말처럼 어른이란 “마음의 넓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나, 몸길은 좀 더 깊어지고, 마음길은 좀 더 넓어진 느낌이랄까.
그러나 며칠 전에도 썼듯, 어제의 無明은 오늘의 明의 바탕이요, 오늘의 明은 내일로서는 이미 無明이다. 하여 우리에게는 하루의 밝음, 하루의 깸, 하루의 오올함, 하루 몇 시간의 오올함이 최종적 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 이외의 企圖는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니 하루의 시작점에서 우리가 들어보는 새소리는 참으로 무서운 명령이 아닌가.
아침에 선생의 일기를 조금 읽었다. 오늘 하루의 인연에 닿은 대목을 여기 옮겨 다시 마음에 선들바람을 통해 본다.
每言多誨事 매언다회사
每口欲食事 매구욕식사
五口多說客 오구다설객
十口歸一士 십구귀일사
말을 하고 나면 말끝마다 후회로다
그러나 입 열면 먹고 싶은 생각뿐이네
다섯 입이 모이면 남 말 하는 것을 좋아하니
열 입은 모여 한 선비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07.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