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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귐에 대하여

by 유동나무 2009. 7. 10.

블로그 행성을 떠돌다가, 티스토리로 옮겨 왔습니다.

여기로 옮겨오면서, 하나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있는데요, 언론/미디어에 발표한 글들을 제외하고는 경어체를 써야겠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높임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블로그ㅡ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지요. 

제가 한국을 떠난 것은 2004년인데요, 십년이면 강산 휘리릭, 이라는 녯말이 무색하게
한오년 새, 강산 휘리릭 된 것 같습니다. 

블로거는 어중이떠중이 방콕귀신들이 아니라 이제 하나의 사회적 목소리의 주인공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저 역시 뒤늦게 이렇게 블로거를, 그리고 누리꾼이라 불리는 낯선 분들을 유의미한 독자로서 인정하게 된 것 같군요. 

처음에 저는 해외에 있으면서, 한국어 소통이 그리워, 소통의 창구로 만들게 되었고, 
그 후론, 일기를 적는 공간, 혹은 일기 적는 습관을 잃지 않게 해주는 공간으로 이용하다가, 
혹은 사람들과 만나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적당히 이용해먹는 공간으로 생각해오다가  
이제 드디어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공간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환이라면 전환을 하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블로그) 이웃간 사귐이라는 것, 
혹은 선택과 배제, 호와 불호(오)라는 우리네 삶의 습관에 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도 저는 거리에서, 여러 사회적 만남의 공간에서 그러한 것처럼, 
선택과 배제의 시선/행동을 만나게 될 것이니까요. 

네이버에서 저와 이웃을 맺었던 분들 중에서 혹은 이런 저런 경로로 저와 인연을 조금 가졌었던 분들 중에서 혹여나 섭섭한 마음을 지니고 계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웃사귐, 혹은 낯선 이웃, 낯선 이에 대한 열음/닫음에 관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란 불가에서 말하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들지 않는다>는 것밖에는 없답니다. 

제가 닫은 것이 아니라, 상대편이 닫는 것에 대해서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닫는 것일까요? 

제 생각엔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어로 대답한다는 reply 라고도 하지만 reponse 라고도 하지요. reponsible 은 그리하여 본디는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 말은 <책임을 지는>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관계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곧 대답하지 않는 것이요, 문을 닫는 것입니다. ㅅㅊㄷㅈ도 아는 소리지요.

하지만, <말하는 것> <대답하는 것> 이것이 우리네 삶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알게 된 이, 낯섦이 조금 가신 이에게 대답하는 것은 가능해도, 아주 낯선 이, 생판 모르는 이에게 대답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마는 것,
 
또, 내 인연의 울타리 바깥이구나, 싶은 사람에겐, 그렇게 여겨지는 이에겐, 일절 말을 하지 않는 것,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이러한 것이 하나의 삶의 문화가 되어, 우리네 삶의 풍요를 옥죄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곳에 블로그를 여는 마당에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새로운 (잠재적) 이웃분들에게, <다른 삶> <다른 소통>을 호소하기 위해서이고, 
기존의 이웃분들에게, 저는 한번도 <닫은> 적이 없다ㅡ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슬슬 나오는 대로, 말보따리를 풀어놓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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