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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

케이트 에번스, <레드 로자> (산처럼, 2016)

by 유동나무 2021. 2. 14.

 

 

100년 전 또는 110년 전 이야기가, 그것도 외국인의 인생 이야기가 AC(After Corona) 시대를 사는 이곳의 우리에게 얼마나 의미 있을까? 하지만,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야기나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일행이 대 일본군 전투에서 승리한 이야기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로자 룩셈부르크가 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에서 경험했던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훨씬 더 의미 있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거대 문제’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거의 소멸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로자 룩셈부르크가 평생에 걸쳐 붙들고 싸웠고 성숙한 시기에 그 본질을 꿰뚫어 보았던 무제한적 자본주의 또는 자본이라는 괴물이라는 ‘거대 문제’는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코로나 팬데믹이나 기후 위기, 산업현장의 중대재해 같은 사안으로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의 구석구석을, 점령당하지 않은 모든 곳을, 즉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 가장 약한 자들의 삶의 현장과 지구의 모든 야생의 장소까지 잠식하고 지배하며 팽창을 지속함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운동의 제국주의적 속성에 관한 1910년대 로자의 통찰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그녀*의 통찰에 기대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체제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플라스틱 문제에, 공장식 축산업 문제에, 산악 개발이나 기후 위기에 그토록 공분을 토하는 이들이, 조주빈과 박원순과 고은과 김기덕의 범죄 행위에 그토록 침을 뱉는 이들이, 로자 룩셈부르크에 무지하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로자가 마르크스나 레이첼 카슨 못지않게 문장력이 훌륭했다는 것, 새와 동물들과 산책을 사랑했다는 것, 시인의 심성을 지닌 경제학자였다는 것, 그런 것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