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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

윤동주,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by 유동나무 2021. 2. 14.

 

동장군이 잠시 물러간 자리, 잠시 푹해진 날씨에 너도나도 뛰쳐나와 네이버 지도에 붉은색 표기가 곳곳에 즐비하다. 어디를 그리들 가시는지? 점심 먹고 잠 바다에 잠시 빠졌다가는 서둘러 길로 나섰으나, 뒤늦게 미세먼지 상태 확인하고는 곧바로 포기하고 리턴. 집에 와서는 어젯밤 읽던 윤동주 시집을 마저 읽는다.

뽕나무밭이 어떻게 푸른 바다로 변할 수 있을까? (상전벽해桑田碧海) 그러나 한국을 떠나 있던 2004년~2013년, 이 땅에서 정말로 상전벽해 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윤동주가 갑자기 주목을 받으며, ‘뜬’ 것도 아마 이 시기일 것이다. 정본 윤동주 전집이 출간된 것이 2004년이고 윤동주 평전이 나온 것이 2014년이니 얼추 들어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2016년 이준익의 영화 <동주>가 나오면서 윤동주는 또 다시 ‘뜨게’ 된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는 외국에서 윤동주를 공부하는 외국 학생들도 보여주지 않았던가.

윤동주, 과연 그 안에 뭐가 있긴 있는 걸까?

윤동주는 김소월과 정지용(1902년생들)의 (한참 어린) 동생이고, 이상과 백석(1910년 즈음 태생)의 동생이며, 김수영과 김구용(1920년대 초반 태생)의 형이다. 즉, 김소월, 정지용, 이상, 백석이라는 자산이 윤동주에게는 있었고, 김수영, 김구용은 그런 자산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었던 윤동주라는 자양분 위에서 나왔다. 북방 기후가 빚어낸 김소월과 백석의 정서, 그리고 이들의 토착문화벽, 결벽증에 가까운 정지용의 맑은 기상과 종교적 열정, 이상의 모더니즘 지향, 1930~40년대라는 시대의 울가망함, 이런 것이 골고루 배인 것이 윤동주임을, 읽어보니 알겠다.

그러니까 윤동주를 읽을 때 우리는 김소월과 정지용, 이상과 백석을, 이 사중의 음을 동시에 읽게 된다. (그러나 그가 가장 기대고 있는 건 단아함을 중시하는 정지용이다.)

또, 윤동주의 시편들로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반도 산골의 풍속도 어느 정도는 상상해볼 수 있는데, 일본을 타고 들어온 유럽의 석탄, 증기기관, 비행기 같은 것이 조선 땅을 누비고 있는 세태에 대한 청년 윤동주의 시적 응시와 한탄도 주목할 만하다. 화석연료 문명, 탄소 문명의 조선 반도로의 틈입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한 사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0대 후반, 20세까지 쓴 시편만을 두고 보면, 윤동주의 시는 정지용의 손바닥 안에 있는 느낌이고 서툰 시편도 적지 않지만, 가령 <종달새>나 <식권> 같은 시편은 완성도가 높다. <종달새>가 방영된 다큐멘터리에 소개되었으니, 정지용과 백석을 믹스한 듯한 <식권>을 소개해 보련다. 한강물을 받아서 바로 끓인 국을 먹어본 적이 있던가...취리히 식당에서는 바로 앞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바로 구워 주던데.

 

식권(食券)은 하루 세 끼를 준다.

식모는 젊은 아이들에게

한 때 흰 그릇 셋을 준다.

대동강 물로 끓인 국,

평안도 쌀로 지은 밥,

조선의 매운 고추장,

식권은 우리 배를 부르게.

-1936년 작. (1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