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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

안셀름 그륀, <길 위에서> (분도, 2020)

by 유동나무 2021. 2. 14.

 

행복하려고 태어난 걸까? 고생하려고 태어난 걸까? 삶이란 무엇일까? 독일인 신부 안셀름 그륀은 삶이 수행이자 순례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거처는 하늘이니, 지상의 삶이란 집 없는 자, 고향 없는 자, 고국 없는 자, 이방인의 방랑(wandering)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현세의 삶은, 이 현세에만 허여된 특별한 여행에 불과하다. 이렇게 확고하게 믿고 사는 사람이기에, 그륀의 걷기는 범상한 사람의 걷기가 아니다. 아니, 이런 기이한 믿음의 신봉자이기에, 이 사람에게 걷기는 묘한 아우라가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자기가 지금 ‘방랑의 운명’에 처했다는 것, 자신의 유일한 고향은 하늘이라는 것, 그 진리를 되새기고 다시 깨닫기에 걷기만 한 방편도 없다는 것. 그것이 안셀름 그륀의 생각이다. 걸으면, 이러한 삶의 성질이, 그 자신에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존 뮤어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안셀름 그륀은 언제나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이상한 문장을 잘도 써내는 것이다.

 

“길을 걷는 동안 관건은 내적 전환, 곧 회심이다. 회심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 사명이다.” (39쪽)

“방랑 수도승은 단순히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고향을 찾지도 않았다. 그저 고향 없이 살아갔다.” (34쪽)

“우리는 (…) 자신을 떠나서 (…) 우리 안의 덕의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42쪽)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갈망, 이 세상을 넘어 고향으로 향하려는 갈망을 건드린다.” (50쪽)

“기도는 (…) 정신의 직접적인 걷기다.” (56쪽)

 

안셀름 그륀의 생각은 대단한 생각은 아니다. <노자> 20장에 대한 해설문에서 여길보라는 중국인은 ‘재기무거(在己無居)’라는 문구를 남겼다. 자기 자신으로 있고, 이 현세의 삶에서 웰빙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해 15억 넘는 강남의 아파트를 소유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의 어느 구석이든, 이방의 땅에 불과하고, 나는 나로서 있으니, 잠을 잘 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나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속에 품은 나이기에 잠을 잘 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