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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영 산문

생존이 번영이다 < 여유가 번영이다

by 유동나무 2022. 8. 29.

 

아침에 인류세, 기후위기 시대엔 생존이 번영이다라는 모토가 필요하다는 말을 아이 엄마에게 던졌다. 늘 하던 말은 아니고, 늘 하던 생각이 오늘은 이런 문장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생존이 번영이다.

한마디로, 인류의 꿈은, 한국인의 꿈은 소박해져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류의 대단한 성취, 민족의 중흥 (“누리 호 우주경제 시대운운) 같은 20세기 식 꿈에서 깨어나, 생존을 꿈꿔야 하는 시대. 지구의 목소리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꿈꾸고 모색하고 궁리하고 계획해야 한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말 자체는 곱씹어보고 들춰볼 필요가 있다. 생존한다는 건 무얼까? 단지 살아남는 것? 어떻게 해서든, 무얼 먹든, 어떤 상태로든? 연명치료로 생존하고 있는, 뇌사 상태의 환자는 생존하고 있는 걸까? 총탄에 맞은 채 치료를 못 받고 있는데 숨만 쉬고 있으면 생존하고 있는 건가?

이 질문에 부딪혀 우리는 생존이 번영이다라는 저 문장을 수정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여기서 그 수정 버전으로 건강이 번영이다같은 문장을 선택하려는 섣부른 생각 역시 접어두는 편이 좋다. 오히려 우리는 건강이라는 질병”(이반 일리치) 상태에 있음이 인식되어야 한다. 포실하게, 질병 없이 웰빙하고자 하는 욕망노자가 생생지후라는 표현으로 수 천년 전에 날카롭게 비판했던 것. 사실 이것과 기후 붕괴 위험을 초래한 20세기 후반기의 쾌락양식 간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그러니 일종의 질병이다.

그렇다면 건강에 집착하지 않는 건강, "수준 높은 건강" 같은 건 어떨까?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수 있을까? 한걸음 더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수준 높은 건강에서 수준 높음이라는 개념만을 추출해 (건강이라는 불편한 개념은 삭제하고) 이것을 따뜻함과 웃음을 자아내는 여유같은 개념으로 승화시켜보고 싶다.

어느 개체의 건강이란 개념이 의미 있으려면, 그 건강은 서로 삼투되는 이 다세계에서 “따뜻함과 웃음을 자아내는 여유라는 형식으로 표출되어야 온전히 의미 있다 할 수 있다. 이 여유는 음향처럼 반향한다, 여유의 주체 안쪽으로도 바깥 쪽으로도. 인류 전체의 건강도 그렇고, 나 개인의 건강도 그렇다.

 

*

 

이 여유를 찾아, 최소 하루 두 시간은 (낮 한 시간, 밤 한 시간) 생각과 언어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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