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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영 산문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2018)

by 유동나무 2021. 5. 14.

 

 

고래다, 로 기억하면 좋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명작 <어느 가족>(2018)을 어제 보았다.

오늘, 집 안에 있으면 딱 좋을 크기의 연못, 동네 연못 주변을 산책하는데 어제 본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쇼타의 아빠(가짜 아빠인가?)가 쇼타를 버스에 태워 보낸 후 “쇼타!”라는 소리를(이것은 언어가 아니라 소리이다) 애절히 외치며 버스를 쫓아가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이 연못에서 그 장면이 하필 떠오른 것은, 이곳이 내가 (아들) 마틴과 추억을 쌓은 곳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연못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가 저 쇼타의 (가짜) 아빠랑 다른 것이 뭔가, 라고 자조 섞인 질문을 내게 던져 보는 것이다.

도둑질 말고는 아들에게 가르칠 게 없는 아빠, 아들을 학교에 못 보내는 아빠, 하지만 놀아주기는 엄청 잘 놀아주고, 나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노동 현장에도 달려가는 아빠...이런 아빠는 실격인가 아닌가, 이런 질문으로 들끓는, 이런 질문을 화면 밖으로 투척하는 좋은 작품이다. 해답이 명쾌하지 않고, 회색빛의 모호한 말이기에, 좋은 것이다. 이처럼 훌륭한 질문은 빠른 해답을 봉합하는 효과를 낸다. 훌륭한 철학과 과학도, 예술과는 다른 방식이나, 훌륭한 질문을 생산하는 해답을 내놓으며 자기를 미래에 방사한다. 하나의 물결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 같은데 영화 같지가 않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영화 속의 골치거리가 영화 밖의 골치거리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심문 기록을 영상화한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후반부의 처리도 훌륭했는데, 그 심문자는 시청자이기도 하다. 자, 저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당신이 심문하고 심판해보라. 이런 의도가 깔린 설정인 것이다. 

그런 심문 과정을 거친 최종적 심판은, 그러나 맨 마지막에 감독이 우리 대신 한다. 쇼타의 부모가 되기에는 그 남녀가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빠는 "역부족"이다. 세상의 어떤 일은 단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막중한 일은...쇼타와 쇼타를 태운 버스의 외면은 바로 이러한 심판의 말이다. 

쇼타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를 함께 했던, 살인자이기도 하고 도둑이기도 한 아빠. 그러나 그도 저 무거운 심판의 벽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무언가가 그를 도와준다면.  

불과 며칠 전에 얼음깨기 놀이를 같이 했었던 것 같은데, 태양이 이리 장난을 해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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