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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김 딱지놀이 논평

by 유동나무 2011. 3. 2.

보라. 진은 플라톤으로 서문을 연다. 왜일까? 그저 A, B, C 이야길 하려는데 플라톤이 필요할까? 아는 척하는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스로 검증해보는 일보다 먼저 생각하는 , 반에서 선생님 칭찬을 받지 않고선, 똘마니들 거느리는 재미가 없음 학교 맛이 나는 , 이런 이를 사람은 현학묵괴라 부르기로 했다. 현학하는 묵괴墨物 라는 말이다. 어쩌다 보니 진보 반에 속하게 진중권 어린이는 현학묵괴의 진수를 보여주는 모범 묵괴다. 그의 플라톤 운운은 그러니까 현학묵괴로서 살아온 타성의 결과다. 습성의 결과다. 보시라, 그대들 모르지? 안다이것 말고 플라톤 인용은 글에서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가 김을 공격하나. 싸움을 이력도 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건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남을 조롱할 가장 현학묵괴로서의 실력을 발휘할 있기 때문이다. 조롱이란 그의 전공으로, 조롱할 때 그는 가장 제 기량과 기술을 뽐낼 있는 것이다. 얼마나 불쌍하고 어리석은 어린인가. 둘째 진보 반의 자존심을 또는 진보 반에 속해 있는 또는 속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자존심을 김이 뭉갰다고, 진보 반의 팻말을 철김이 빼앗아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르지? 어서 가서 팻말 찾아와, 이런 말을 누가 찔러 주었는지 어쩐지.

 

 

글로 진은 김에 승리하였다. 그러나 경우 진의 승리는 진의 패배다. 진의 참패다. 현학묵괴는 현학묵괴짓할 모조리 패배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롱받고도 허허거리는 것도 바보짓이지만, 조롱만한 바보짓이 없다는 모르는 바보만큼 바보도 없다. 허기야 그걸 모르니 계속 ㅎㅎㅁㄱ하는 것이다. 하기사 그걸 모르니 그의 ㅎㅎㅁㄱ는 용혹무괴다.

 

 

  사람이 그나마 진보다 김을 높이 사는 것은 적어도 김은 이런 싸구려짓은 하지 않거나 또는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싸구려를 싸구려로, 후진 것을 후진 것으로 , 저질을 저질로 보는 눈은 있다.

 

 

그러나 김도 진과 더불어 창조적 정신의 임자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 아니랴. 진보 반의 딱지는 떼어버려도 좋은 무엇인데, <이게 진짜 진보 딱지다>, <아니다 너는 B 우나 받는 놈이니 A 수를 받는 우리의 딱지다> 하고 있으니 하는 소리다. 시대에 참된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나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대에 참으로 인민의 해방을 생각하는 이라면 인민이라는 말의 성급한 복원을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 자기 앞에 좌파 부치면 자기가 좌파가 되는가? 진보의 가치? 진보는 지켜야 한다? 도대체 ? 그런 이름으로 모였으니까? 모여 있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우리 학급 이름이 진보 반이니까? 인민은 민중은 대중은 씨알은 다중은 시민은 모두 학교 바깥에 있는데? 그들에게 진보니 민노니 신한국이니 민주니 한나라니 하는 딱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데?

 

 

진보란 말은 사실 그다지 좋은 말도 아니다. 언제까지 진보인가? 지금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진보가 성찰되어야 하는 시기지, 아무런 성찰 없이 말이 좌파 정치를 대표하는 말이어서는 된다. 해를 묵고 묵고 묵은 이야기다.

 

 

문제는 조직화다? 조직화에는 구심체가 구심체의 이름이 필요하다? 그래 진보신당. 이름 있잖아. 이름 좋다고 이름 찾아 사람들이 모이나? 김이 인민이라고 혈을 토하며 강조하는 사람들이 모이나? 이름이야 진보신당이 최고지. 그러나 그렇다고 진보되나? 그렇다고 진보 정치의 이상을 생각하는 이들이 그리로 모이나? 모였나? 같은 사람도 가는데? 같은 현학묵괴 어린이들부터 몰아내라는 말이다. 몸이 아니라 문서 낭독으로 정치하겠다는 놈들부터, 시사논평가들부터 진보 반에서 몰아내라는 말이다. 정신을 혁신하라는 말이다. 딱지에 집착하지 말고 동원의 방법을, 조직하는 방법을, 구사할 언술의 전략을 찾으라는 말이다. 찾으려면 새롭게, 창의적으로, 신선하게, 구태에 들러붙지 말고, 구습에 집착하지 말고 찾으라는 말이다. 구태와 구습을 옹호하는 분자들을 복도로 내보내 손들고 있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과제는 어떻게 이쪽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선거 연합 과정에서 좌파의 자리를 고수하고 키워가느냐, 아니라, 차라리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희망은 오직 정치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불러 넣을까, 생각에 불을 지필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새로운 술이 새로운 부대에 담기게 되지 않을까? 새로운 물고기들이 새로운 강줄기로 흘러 들지 않을까? 진보가 새로우려면, 그리하여 진보 신이 되려면, 진보가 되려면, 생활 정치라는 새로운 무대로 나가는 밖에는 달리 길이 없지 않을까? 녹색 이념을 곁다리로가 아니라 하나의 핵심적인 이념으로 삼는 밖에는 다른 길이 없지 않을까? (, 낡고 낡은 이야기. 비판적 지지론 20년이라는데, 이것도 20년은 가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이야기인지도.) 결국 물갈이, 세대갈이가 되지 않는 좌파 정치의 앞날은 캄캄하지 않을까? 아니 물갈이, 세대갈이 하지 못하는 차라리 멸망하고 마는 것이, 하여 민주당 앞잽이나 하고 마는 것이 그들의 마땅한 운명이 아닐까? 앞으로 대선 치르려면 2 가까이 남았는데, 과연 벌써부터 연합논의를 필요가 있는가? 선거 준비가 아니면 일이 그렇게도 없는 것인가?

 

 

 

진보 호는 결국 같은 어린이들 때문에, 무언가 괴짜스럽고 현실적 무게감이, 진중한 책임 정치의 자세가 없다는 느낌을 주는 행동 양태, 언술 양태 때문에, 양태와 당의 정체성과 연관되는 이미지 때문에 더욱 무너져가는 같은데, 진보 사람들은 이걸 모를까? 이걸 끝내 모르는 , 진보 호의 궤멸은, 진보 반의 패배는 시대의 참된 진보를 원하는 이들의 관심사가 없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은 같은 이가 간단히 현학 행위를 위해 차용하고 버려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철인정치론은 그저 철학자-똑똑한 놈이 정치해야 한다, 이런 말이 아니다. 그의 철인정치론은 이를테면 같은 이들, 현학묵괴 하는 이들, 조롱거리로 삼는 이들은 절대 정치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 말이다. 함에도 ㅎㅎㅁㄱ 하는 어린이가 그의 철인정치론 운운하는 꼴이니 이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이게 어디 봐주어도 되는 일인가.

 

  

결론: 플라톤의 철인정치론. 이야길 꺼냈다. 진보 학생들은 되도 않는 범생의 되도 않는 요약본 읽지 말고 스스로 공부부터 해라.